‘사람노릇’이 모두 그렇지만 ‘엄마노릇’은 정말 힘들다. 시작도 힘들더니 오래한다고 숙련이 되지도 않는다. 적성검사가 있다면 한번쯤 받아보고 시작했어야 했다. 덜컥 겁 없이 뛰어들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사소하지만 일러줄 것이 있긴 했다. 서너 살 애들도 아니니 나만 그냥 지나가면 모두가 편하겠지만, 순간 내가 엄마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에 생각이 미쳐 또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러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 잔소리에 어느 덧 목적은 퇴색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 혹여 오늘과 같을 내일에 스스로 지쳐 녹음기와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나만 남는다. 서둘러 집을 나선 아이들도 지겨운 자명종에 잠을 깬 기분일 것이다.
좋은 엄마는 커다란 나무와 촛불, 그리고 등대와 샌드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또 좋은 엄마는 맑고 깊은 우물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꽃과 열매와 쉼터를 위한 그늘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하고, 아이의 가슴속을 환히 밝혀주어야 한다. 어둠과 풍파 속에서도 길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하며, 때로는 분풀이 대상도 되어 준 뒤, 아이들이 더욱 질기고 강해져 다시 세상으로 힘차게 뛰어나가도록 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우물엔 끝 모를 욕심과 눈물만이 채워져 있다.
아기를 낳고, 첫젖을 먹이며 많은 엄마들이 그 뿌듯함에 눈물을 흘린다. 나도 처음 내 아기를 안고 가슴이 아파 많은 눈물을 흘렸다. 뿌듯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붕어빵 같이 나와 꼭 닮은 아이를 안고, 언젠가 내 어머니가 이처럼 나를 안고 품어보셨을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은 꿈, 결코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 그 깨어진 꿈들에 생각이 미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밝혀주신 불빛을 헤아리지 못하고 탯줄을 끊은 그 때부터 어머니를 외롭게 했으리라는 후회, 결국 홀로서기 위한 노력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는 몸짓이었을 뿐인데도 어머니는 나를 용서하고 격려했으리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때부터 나보다 백배는 더 나은 아이에게, 내 어머니보다 천만분의 일도 못 미치는 어리석은 엄마인 나는 끝없는 욕심을 가졌다. 그리고 욕심은 세월과 함께 불어나, 나는 말간 잇몸에 붙은 밥풀 같은 아이의 이 두 개에도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배부르고 족하던 시간을 잊어버렸다. 돌고 있는 팽이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거듭 팽이채를 내려치기도 한다. 끝없이 믿고 사랑하기도 어렵지만 절제하고 포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인간은 우주와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두 개의 소우주를 탄생시켰다. 무한한 하느님도 창조는 하셨으나 우리가 저지른 죄는 어쩌지 못하셨는데 유한한 내가, 내가 나를 모르면서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면서 또 다른 두 개의 우주를 관리하고 빛내겠다는 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그저 연구하고 또 연구해 볼 일이다. 달같이 닿아보고 화성같이 캐내보며, 어딘가에 있을 내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의 별이 그들에게 있을지 지켜보고 소망할 일이다.
오늘도 내 아들 딸이 내리는 별빛이 내 우물을 비춘다. 나는 그 빛에 때로 황홀하고, 그 빛 때문에 때로 서럽지만, 아직도 그 빛이 내게 남기는 숙제와 의문과 소망을 결코 저버릴 수 없다. 그러기에 아직도 깊고 깊은 내 어머니의 우물로 내 우물을 채운다.
이정화(주부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