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비 조카 김신영①] 오, 나의 아줌마

[김다비 조카 김신영①] 오, 나의 아줌마

오, 나의 아줌마

기사승인 2020-05-13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김신영.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표준 발음법에 따르면 [김시녕]이라고 발음해야 마땅하지만, 왠지 [김.신.영]이나 [김신녕]으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 이름. 김신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가리지 않고 웃길 준비가 돼 있는 코미디언이다. 2003년 데뷔한 그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강호동을 패러디한 ‘행님아’ 코너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겐 동물적인 개그 감각이 있었고,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인물 묘사 능력이 있었으며, 연기력도 뛰어났다. 심지어 순발력도 탁월해 MBC ‘세바퀴’나 KBS2 ‘스타골든벨’ 같은 토크쇼에서도 날고 기었고, KBS2 ‘청춘불패’와 MBC 표준FM ‘심심타파’에선 유려한 진행 능력까지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김신영의 활약이 가장 도드라졌던 프로그램을 꼽자면, 많은 이들이 MBC에브리원에서 방영했던 ‘무한걸스’를 떠올릴 게다. 당장 유튜브에 ‘김신영 레전드’를 검색해 보시라. 검색되는 동영상의 태반이 ‘무한걸스’에서의 활약상을 편집한 것이다. “제일 바쁜 6시 반에” 여러 개의 메뉴를 시켰다며 화를 내는 백반집 사장, 세신비를 ‘더블’로 줘도 “언니가 해초 마사지를 안 하는 이상은” 순서를 당겨줄 수 없다는 세신사, “저 한곡사람이에요”라면서 어설픈 한국어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조선족…. 자판기처럼 순식간에 모사하고자 하는 인물과 상황에 몰입하되 디테일마저 놓치지 않는 애드리브에는 ‘레전드’라는 수식이 과하지 않다.

지난 1일 정식 데뷔한 둘째 이모 김다비는 김신영이 거쳐온 수많은 ‘아줌마’들의 ‘끝판왕’ 같은 캐릭터다. 탁월한 묘사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김신영에 의해 재현된 중년 여성 캐릭터들은 재밌긴 하지만, ‘기 센 아줌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일정 부분 기대고 있거나 혹은 이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웠다. 대부분 즉각적이고 강렬한 웃음 안에서 희석되곤 했지만, 그의 상황극 안에선 어떤 불편함이나 아슬아슬함이 있었다. 그가 KBS2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판자촌 이웃이었던 인도 삼촌과의 일화를 소개할 때, 제작진이 웃는 송은이의 모습 위로 “웃으면 안 되는데…”라는 자막을 달았던 것도 이런 아슬아슬함 때문이었다.

반면 김다비는 자신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생동하는 존재다. 그는 “조카들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둘째 이모가 대신 해주는 거”(MBC FM4U ‘정오의 희망곡’)라면서 직장인의 애환을 대변한다. 돈에는 인색하게 굴면서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에만 능한 사장에게 “입 닫고 지갑 한 번 열어 주라”고 하거나, 가족 같은 회사를 강요하는 사장에겐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고 지적하는 식이다. 김신영에게서 어디서 본 것 같은 인물을 발견했을 때 느낀 감탄은 김다비를 거쳐 내 얘기를 하는듯한 공감으로 확장되고 깊어진다. 

동시에 김다비에겐 그 세대 여성들의 리얼리즘 또한 살아있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김다비는 자신의 이름을 3년 전에 지었다고 했다. 김다비 캐릭터가 2017년 JTBC ‘님과 함께 시즌2 – 최고의 사랑’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짓는 중·노년 여성의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대부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아무렇게나 이름 지어졌다가 나이가 먹어서야 새 이름을 만들게 되는 경우다. “예전부터 노래에 대한 열망은 엄청 뜨거웠”는데 “아무도 몰라”줘서 “‘에라 모르겠다’ 내가 치고 나간 거”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배움과 성취를 향한 욕망이 무시당한 경험이 어디 다비 이모만의 것이겠는가.

지난 17년간 김신영은 짧은 몇 번의 공백기를 제외하면 거의 늘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여성 코미디언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는 방송가가 김신영에게만큼은 예외적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신영은 그저 온갖 개인기로 무장해 살아남았을 뿐이다. ‘무한걸스’도, ‘청춘불패’도 없는 요즈음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방송이 외면한 누군가는 어디서든 ‘판’을 벌리고, 그 안에서 김신영은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며 김다비 같은 인물을 만들어냈다. 부디 이 말이 그의 지난 활약을 무시하는 표현으로 들리지 않길 바라며 감히 예상한다. 김신영의 전성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고.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SNS, 미디어랩 시소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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