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가수 겸 배우 이진혁이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손으로 쓴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해당 글에는 그가 출연한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의 종영 소감과 사과문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최근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태도 논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 “배려가 부족해서 상처를 입혔다”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죠. 다수의 매체는 이를 ‘태도 논란’, ‘연예인병 논란’에 대한 사과문으로 보도했습니다. 마치 이진혁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말이죠.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릅니다. 사건은 지난달 30일 ‘그 남자의 기억법’ 홍보를 위해 배우 문가영과 김슬기가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시작됐습니다. 방송이 종료되기 전, 극 중에서 김슬기와 커플로 연기 중인 이진혁이 댓글로 깜짝 등장했고, 이에 김슬기가 “자기야, 이따 봐”라고 말했습니다. 사건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고 기분 나쁜 팬들이 있었나 봅니다. 드라마 속 설정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일부 이진혁 팬들이 김슬기의 SNS에 악플 테러를 감행한 것이죠.
이에 화가 난 이진혁이 나섰습니다. 그의 입장에선 자신의 팬들 때문에 동료 배우인 김슬기가 피해를 입었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죠. 이진혁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팬들을 타이르듯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누나(김슬기)도 나에게 사과했다”며 “자기도 무의식적으로 나올 줄 몰랐다, 촬영 중이었고 정말 미안하다고 해주셔서 넘어가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슈스(슈퍼스타)가 그런 것에 신경 쓰면 피곤하다”는 댓글에 “그건 그런데, 내가 마음이 아픈 건 브이단(이진혁 팬클럽)끼리 싸우는 것이다. 내 첫 드라마고 데뷔작인데 이 드라마를 ‘최악의 드라마’로 남기고 싶진 않다”고 답했고요.
이를 본 일부 팬들은 또 이진혁의 답변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진혁이 연기 선배인 김슬기 만의 문제인 것처럼 언급한 것, “넘어가기로 했다”는 발언, ‘슈스’라는 표현을 인정한 것으로 이진혁의 잘못을 몰아간 것이죠. 결국 이진혁은 태도에 문제가 있고 연예인병에 걸린 것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논란이 되고 사과문까지 쓰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진혁의 대처를 문제 삼을 여지도 있습니다. 팬들을 억울하고 화난 태도로 대할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설득했어야 했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사과문을 쓰게 만든 본질이 아닙니다. 일부 극성팬들이 없는 논란을 실제 논란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는 아이돌에서 이제 막 배우로 거듭나는 유망한 연예인을 길들이는 과정, 혹은 갑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좋아한다는 연예인의 마음과 사회적 이미지에 모두 상처내면서까지 말이죠.
이들의 행동은 정말 ‘팬’으로서 누군가를 위해서 한 것일까요. ‘누나’라고 부르며 친해진 동료 배우를 ‘선배 배우’로 마음대로 규정하고, ‘슈스’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며 인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합의된 내용을 ‘넘어갔다’는 단어 하나로 판단하는 것도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몫이고요. 그 결과 그들이 ‘팬’을 자처하는 연예인은 ‘연예인병’에 걸린 잘못으로 사과문을 쓰게 됐습니다. 직접 물어보고 싶습니다. ‘팬’ 여러분, 이렇게 돼서 정말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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