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서편제>와 <파리넬리> 그리고 프로의 의의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서편제>와 <파리넬리> 그리고 프로의 의의

기사승인 2020-05-20 13:46:48

<서편제(1993)>는 '뿌리깊은 나무'(제2호, 1976년 4월)에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 소설, '서편제'를 비롯, '남도 사람', '소리의 빛', 세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영화에서는 가난과 사회의 냉대라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득음이라는 최고 경지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갖은 역경 속에서도 판소리를 고집하는 유봉. 그의 투철한 프로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과거의 자기 친구들에게조차 멸시를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딸을 득음의 경지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실에 너무 집착하여 딸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또한, <파리넬리(Farinelli Castrato, 1994)>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카스트라토 중의 하나였던 파리넬리(본명 카를로 브로스키, 1706~1782)의 생애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7, 18세기 유럽에서는 교회법으로 여성이 무대에 서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으므로, 여성의 음역을 낼 수 있는 남성 소프라노들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카스트라토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즉, 거세를 당함으로써 신의 목소리라 할 만큼 섬뜩한 목소리를 낸 파리넬리의 이야기다. 물론, 거세를 했다고 해서 파리넬리와 같이 모두가 뛰어난 가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였던 18세기 이탈리아에서만 4,000여 명의 소년들이 거세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봉사가 된 송화, 거세당한 파리넬리, 이들을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프로(professional)는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가능성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함으로써, 프로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프로는 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대상이 무엇이든 뜨거운 가슴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일생 동안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일 것이다. 프로가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불후의 명작 '실락원(1667)'을 완성한 존 밀턴(1608~1674), 宮刑(궁형)을 당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사기(史記)'를 저작한 사마천(司馬遷), 음악가가 귀가 먹었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극복하고 위대한 ‘합창교향곡’을 탄생시킨 베토벤(1770~1827), 시스티나 대성당 벽화를 1508년에 시작하여 12년만에 완성한 미켈란젤로(1475~1564). 이러한 훌륭한 인생 선배들의 치열한 삶을 되새겨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기에 진정한 프로란 은퇴가 없다. 은퇴라는 것 자체가 죄악이며, 그들은 평생 현역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프로 10명만 있다면, 우리나라는 더욱 희망찬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지나칠까?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 할지라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에서 프로가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프로들이 그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는 나라이었으면 한다. 이런 ‘자기 일을 즐길 줄 아는’ 프로들이 많은 나라, 그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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