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이 출동한 사고 현장에서 나올만한 대화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이 새어 나온 곳은 인천 어느 도로에 서 있던 택시 안입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6시29분. 인천 서구 청라동에서 A(57)씨가 택시에 탑승했습니다. 불콰한 얼굴에 비틀거리던 A씨. 누가 봐도 만취한 상태의 그는 뒷좌석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더니 급기야 운전석까지 상체를 내밉니다. 여성 택시 기사 B(59)씨가 당황한 건 그때부터입니다. 이동 경로 등을 두고 실랑이를 하던 A씨는 B씨의 입을 막고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등의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B씨가 여자인 것을 인지한 A씨는 부적절한 신체 접촉까지 시도했다고 하는데요. B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현재 A씨는 인천 서부경찰서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및 강제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청원은 사건 발생 나흘 후인 27일에 올라왔습니다. 자신을 B씨의 자녀라 밝힌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알코올 만취자, 여성 택시 기사 폭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운수업 법이 강화되어 (기사들이) 안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청원인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며 “차마 영상에 모든 걸 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택시 기사를 비롯해 대중교통 기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와 (제도) 개선을 위해 도와달라”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청원은 29일 오후 9시30분 기준 5만6611명이 동의 서명한 상태입니다.
택시 기사를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지난해 12월2일 제주시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가다 택시 기사에게 욕설을 한 70대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택시 기사가 ‘파출소에 가자’고 하자 화가 난 이 남성은 기사의 어깨와 얼굴을 수차례 잡아당기고 입술을 물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건도 있습니다. 지난 22일 인천 지역 한 경찰 간부가 술을 마시고 택시 기사를 무차별 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요. 해당 경찰 간부는 택시 기사가 자신이 말한 목적지와 다르게 간다는 이유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승객의 무자비한 폭행에 시달리는 건 여성 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2월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40대 남성이 만취한 상태로 택시에 올라타 60대 여성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해자는 기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같이 죽자”며 핸들을 잡아당겼고, 위험을 느낀 기사가 이를 말리자 무차별 폭행한 뒤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그가 택시 기사를 폭행한 이유는 단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입니다. 지난 2004년에는 술을 마시고 시내버스를 타려 했으나 버스가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하는데 격분해 여성 버스 기사의 얼굴을 때린 50대도 있었습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 건수는 2018년에 2425건입니다. 2015년 3148건, 2016년 3004건, 2017년 2720건 등 해마다 수치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적지 않은 숫자의 폭행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가법상 승객을 태운 차량의 운전자를 폭행하는 것은 가중처벌 대상입니다.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더 큰 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운전자를 폭행해 검거된 1만6099명 중 구속된 인원은 137명에 그쳐 구속률은 0.9%에 불과했습니다. 보다 못한 기사들은 보호 격벽을 설치하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자기부담금 등으로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여전히 미미한 보호 대책과 음주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등으로 계속되는 운전 기사 폭행. 다른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범죄의 끝은 어디일까요.
여러분은 청원에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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