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적 약자의 현실… 세심한 정책 배려 있었다면

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적 약자의 현실… 세심한 정책 배려 있었다면

기사승인 2020-06-11 18:14:31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코로나19 이후 사회·경제적 약자를 향한 낙인과 혐오,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1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보고회’를 열고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수용자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청도대남병원 등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점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안전과 보호란 미명 하에 집단시설에서 지내는 장애인들의 처지란, 평생 코호트 격리된 채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 이런 처지의 장애인들은 전국적으로 8만8000명으로 추정된다.  

장은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시설의 관리를 원활하게 하는 주요 목적으로 이러한 시설들은 장애인들에게 개인 공간이 마련해주지 않는다”며 “모두가 같이 먹고 자고 씻는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통제된 동선, 제한된 정보와 지원 등 폐쇄적 구조는 장애인들이 감염병 발생 시 더 열악하거나 취약한 조건에 놓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감염병 예방 및 대책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이 장 활동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유예되는 장애인의 인권은 교육권이나 정보 접근권 측면에서도 드러났다”며 “감염병 발생 시 정확한 정보나 예방방법, 지원방법을 모르면 건강권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 또 교육부는 온라인개학을 발표했지만, 장애를 가진 학생 등을 위한 장비나 보조 인력은 배치되지 않았고,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었다”고 밝혔다.

해결책은 있다.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려한 감염병 매뉴얼이 마련되면 가능하다. 장 활동가는 “감염병 등 재난이 발생됐을 때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정책이 필요하다. 배제 혹은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공적 지원 체계 구축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의 지음 활동가는 “그동안 어린이·청소년에게 놓여있던 기존 한국의 교육제도나 여건이 가진 한계가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며 “학교에 다수를 모아서 교육하는 방식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여지가 전혀 없지만, 주된 대책도 대학입시 일정에만 맞춰져 있는 현실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거나 예체능으로 진로를 나가려는 학생도 있지만, 무시됐다. 한국의 수업일수가 190일 이상으로 법에 명시돼 있어 이마저도 줄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어린이·청소년은 참여할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했다”면서 “등교 과정에서도 교원과 학부모만 논의했을 뿐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보육받는 대상으로 보고 결정이 내려지면 따라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 높은 인구밀도로 모아야 하는 교육 외 다른 방식도 필요하다. 다양성을 고려해 차별이나 배제없이 가정환경, 출신국가, 장애여부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차별없는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정시설·치료감호소·소년보호시설·외국인보호소 등 수용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누구나 감염병에 걸려서도, 사망해서도 안 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며 “수용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가 굉장히 심해 이런 감염병 상황에서도 후순위로 보장되는 게 수용자의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청송교도소, 대구교도소, 김천교도소, 서울구치소 등에서 수용자 3명과 직원 9명 등 1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서 변호사는 “방역을 잘해서 막은 것이 아니”라며 “수용시설은 감염병이 퍼지기 쉬운 환경이다. 한 군데라도 확산하면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수용자들의 취약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건 대책 없이 생명의 위험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해 법무부에 따르면, 5월 기준 전체 교도소 수용 비율이 108.8%에 달한다. 과밀수용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6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고 결정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서 변호사는 “수용시설은 과밀수용과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대규모 감염의 확산에 대응할 체계적 환경을 갖추지 못한다”며 “정부는 수용시설을 틀어막다가 감염병이 확산하면 석방하겠다고 한다. 대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면회나 접견도 제한했다. 서 변호사는 “외부와 소통할 권리는 수용자 인권의 핵심”이라며 “좋은 등급을 받은 수용자들에 한해 스마트 접견을 하도록 하고 있다. 재난상황에서도 수용자의 인권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차별없이 보장돼야 하는 중요한 가지”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인권존중의 원칙 ▲차별금지와 특별한 보호의 원칙 ▲사회적 소통과 참여보장, 의사결정의 원칙에 따라 정부는 방역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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