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아폴로 13호(Apollo 13, 1995)’와 실패학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아폴로 13호(Apollo 13, 1995)’와 실패학

기사승인 2020-06-24 11:26:57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구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의 대립상태를 ‘냉전(冷戰, cold war)’이라 한다. 이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월터 리프만이 저술한 “냉전(The Cold War, 1947.)”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냉전체제에 들어 미․소 양국 간에 군비축소 경쟁 못지않게 우주경쟁이 치열하였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소련의 스푸트니크1호가 1957년 10월 발사되어 1958년 1월 4일까지 첫 지구 궤도비행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에 앞서기 시작한다. 그러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25일 “1960년대가 끝날 때까지는 인간을 달세계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까지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시키고 싶다”는 이른바 ‘아폴로계획’을 발표한 이후, 마침내 그 꿈이 실현된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인류의 작지만 거대한 도약의 발걸음’을 달 표면에 내디디면서 미국이 다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아폴로13호는 1970년 4월 11일 13시 13분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달 탐사를 위해 세 번째로 발사되었다. 영화 <아폴로13(Apollo 13, 1995)>은, 아폴로 13호의 선장이었던 짐 러벨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발사 후 3일째 되던 날(4월 13일), 달 착륙을 시도하려는 순간(불길한 숫자라는 13이 세 번이나 겹침.), 산소탱크와 연료탱크가 폭발함으로써, 달 착륙에 실패한다. 그러나 ‘오딧세이’라는 사령선의 이름처럼, 세 우주비행사는 4일 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절대 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귀환에 성공한다.

이 아폴로13호의 실패를 ‘성공적 실패’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우주선의 전력부족, 산소부족, 이산화탄소증가 등의 원인으로 무사귀환이 거의 불가능한 유인 우주비행사상 최악의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신속․정확한 대처와 지상 관제본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승무원 전원이 무사히 귀환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은 ‘실패(失敗, failure)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였는데, 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심지로 쓰일 재료를 찾기 위해 흑연, 구리선 등 온갖 재료들을 다 사용하였다. 결국, 필라멘트를 사용함으로써 발명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2000번의 실패를 겪었다고 한다. 전구를 발명한 후에, “2000번이나 실패하셨으면서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에디슨은 “실패라뇨 전 단지 2000번의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는 “천재란 99%가 땀이며, 나머지 1%가 영감이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실패학의 대가인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성공 확률은 0.3%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실패를 감수하지 않으면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항상 햇빛만 비친다면 그 땅은 사막이 될 수밖에 없다. 가끔 비가 내려야 땅이 비옥해진다. 모든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다만 실패했다고 해서 그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넬슨 만델라는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실패는 또 다른 성공의 출발점이 된다.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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