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희란 인턴기자 =사상 첫 ‘택배 없는 날’ 택배기사들이 모처럼의 휴식을 가졌다. 다만 이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CJ 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 로젠택배 등 4개의 대형 택배사들은 14일 하루를 ‘택배인 리프레시 데이’로 지정해 택배 배송을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3일 주요 택배사들과 통합물류협회와 함께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물량이 급증해 택배기사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노동계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공동선언은 ▲매년 8월14일 ‘택배 쉬는 날’ 정례화 ▲심야시간 배송 지양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환경 구축 ▲택배기사의 처우개선 위한 법령 요구사항 준수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택배기사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이날 택배기사들은 ‘몇 년만에 가족이랑 여행간다’, ‘그동안 몸이 아파도 못갔던 병원에 간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내려간다’며 휴일을 만끽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세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택배 종사자들이 평일 휴가를 얻게 된 건 택배산업 출범 28년 만에 처음”이라며 “1년에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연휴 후 ‘물량 폭탄’ 우려도 나왔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휴가가 더 간절하다”면서 “밀린 물량을 하루에 다 처리하는 게 아닌 연휴 후 3~4일 동안 분산해 처리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휴가를 얻게 됐지만 고충은 여전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노동위원회 측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최장근로시간, 휴일, 추가수당, 산재보상 등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모든 노동 복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택배 노동자들은 위·수탁 계약을 맺기 때문에 회사에 고용되는 형태가 아니다. 따라서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다.
이러다보니 택배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높다. 택배연대노조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은 택배사가 업무를 멈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주6일 하루 13~16시간 매일 하루 300개 가량의 택배를 배달한다. 코로나19 발생 후 5명의 택배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모두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였다.
정해진 임금도 없다. 택배기사는 임금이 아닌 배송 건당 수수료 형태로 돈을 받는다. 배송 한 건당 이들이 받는 수수료는 택배비 2500원 중 고작 700~900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1000원이었던 수수료는 택배업체간 경쟁으로 인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기사들이 하루 휴가를 내고 싶다면 본인 대신 배달해주는 이른바 ‘용차’를 구하고 이들에게 수수료를 대신 줘야한다. 용차에게 주는 수수료는 건당 3000원. 일인당 하루 평균 물량이 300건이기 때문에 하루 용차를 구해 쉬기 위해선 약 90만원을 써야한다. 사정이 생겨도 쉴 수 없는 이유다. 김 국장은 “배달 수수료가 계속 떨어져 이전과 같은 금액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이, 오래 일해야한다”며 “수수료가 올라야 장시간 노동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하경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각 택배회사들이 택배기사들을 직접 고용해 이들이 정규 노동자로 인정돼야지만 고질적 문제인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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