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매’ 기반 국내 의약품 유통, 어떻게 선진화할까

‘도도매’ 기반 국내 의약품 유통, 어떻게 선진화할까

도매상·의료기관의 불법행위 제재 수단 강화… 신약·제네릭 제도 정비

기사승인 2020-08-21 03:00:04
의약품 공급 및 구매체계 개선방안 3차 토론회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의약품 유통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해 도매상·의료기관의 불법행위 제재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약 개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일 의약품 공급 및 구매체계 개선방안 3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의약품 기술혁신과 유통거래 선진화 방안이 주제로 다뤄졌다.

주제발표는 ▲이상원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이재현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박성민 HnL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평수 차의과대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가 맡았다. 

토론회는 서동철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됐다. 토론자는 ▲이혜재 경상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김준수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정책위원장 ▲서동삼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정책위원 ▲김기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약가제도전문위원회 전문위원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 ▲김상일 일간보사의학신문 본부장이 참여했다.

이상원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제약산업학과 교수는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을 성장 초기 단계로 봤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시도한 것은 20년 전”이라며 “현재까지 국내 허가된 신약 가운데 국내 개발 신약의 비율은 약 10%로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20년간 누적 30개 신약이 국내에서 개발됐다”며 “연간 1.5개정도 국내개발 신약들이 시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제약계는 다른 산업계에 비해 학계·연구계의 기여가 크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대학·연구소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기술 혁신이 원활히 일어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신약 개발에 공공연구소, 대학연구소의 기여도가 13%~20%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개발 신약의 경우 신약 30개 의약품특허정보 분석 결과 공공연구소, 대학연구소의 기여도가 8%로 산출됐다. 

대학과 연구소가 기업과 쉽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조언이다. 아울러 기업들은 신약 개발 경험을 가진 기업 및 인재들과 전략적 제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인적 역량개발과 개방형 혁신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제약산업학과 교수는 의약품 유통 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국내 의약품 유통 구조가 점차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선진국에서는 소수의 도매상이 시장을 과점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내 10개 의약품 도매상의 시장 점유율은 48%다. 이 가운데 지오영, 백제약품, 쥬릭 등 3개 주요 도매상이 34%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3개사가 92%를, 일본은 3개사가 64%를 점유하고 있다. 

다만, 이 교수는 편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의약품 유통 구조는 총판도매, 전납도매, 협력도매 등 ‘도도매’ 거래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요양기관이 도매마진을 통해 약가 차액을 확보할 목적으로 특정 도매상에 일괄 판매 대행을 맡기는 편법 행위가 나타났다. 요양기관이 직접 도매상을 운영하는 직영도매상도 등장했다. 변형된 형태의 판매대행사(CSO)를 통해 외관상 판매 수수료로 여겨지는 비용을 주고받으면서 리베이트가 오가는 사례도 있다. 

이 교수는 도매상의 경영 합리화를 위해 구매전용 카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CSO를 제도권으로 편입 시켜 약사법상 규제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제거할 필요도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처럼 ‘혁신형 유통기업’을 도입, 도매상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중장기 대책으로서 시도해야 한다. 아울러 편법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엄격한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어 박성민 HnL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의약품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쟁이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오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의약품 시장에서는 이 같은 경쟁이 발생하기 어렵다. 소비자, 구매자, 제품 선택자가 모두 다른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사와 판매사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제품 선택자인 의료 서비스 공급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경쟁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이 높은 제네릭 의약품이 시장에서 선호되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리베이트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 부작용으로 CSO를 비롯해 의학전문지, 도매상 등을 통한 우회적 리베이트 제공이 만연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 서비스 공급자의 불법행위를 제재할 수단을 마련하고,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부 고발을 활성화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는 미국의 경우 리베이트 사건이 적발되면, 의사나 약사가 리베이트로 제공받은 금액을 공개하는 조치를 도입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평수 차의과대학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는 공정거래를 위한 수단이 그동안 충분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 구축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 구축 ▲공개경쟁계약 확대 등을 시도했다. 그러나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은 약제비 지불 방법이 까다롭고, 거래 당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아 폐기됐다.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와 공개경쟁계약 등도 당위성을 내세울 뿐, 참여 유인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현실적인 시장 환경을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약품 역시 상품이므로 요양기관의 마진을 일부 인정해 불법 행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거래가를 반영한 상한가를 주기적으로 조정할 필요도 제기됐다. 마진을 포함한 실거래가의 실체를 파악한 후, 지속적으로 이를 반영해 가격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의약품거래소의 거래정보를 활용해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조언했다.

이혜재 경상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이어진 토론회에서 이혜재 경상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건강보험이 국내 개발 신약을 대하는 관점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약가 우대 정책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데, 정책의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의 신약 개발 도전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건강보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분석해야 한다”며 “개발뿐 아니라, 신속한 시장 진입을 도울 제도적 수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리베이트 방지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급여목록을 특허 만료 여부로 이원화하고, 입찰제를 도입하면 성분명 처방이 용이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네릭 의약품의 상품명을 성분명과 결합하도록 정해, 목록관리를 성분별로 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방안도 시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준수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정책위원장은 “2017년 기준 800개가 넘는 제약사가 존재한다”며 “연구개발 능력이 없는, 제네릭 매출에 의존하는 사업체가 난립했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과 특수관계에 있는 도매상들도 적절한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처방으로 보험자 입찰제, 의약품거래소 설립은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부가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을 연이어 제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네릭 위주 제약사들이 보험자 입찰제를 마주하면, 저가 덤핑 낙찰에 몰입하며 대응하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의료인들의 제네릭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공적 비영리법인의 형태인 의약품거래소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방만 경영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서동삼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정책위원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상용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가 바이오의약품 신약개발정책지원을 약속하며 관련 예산을 약 18% 증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는 정부가 국내 기업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24조 규모의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은 10% 수준”이라며 “성장 가능성이 큰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서 위원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은 긍정적이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아 국내 신약들이 시장 진입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학계·연구소·병원이 연계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김기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약가제도전문위원회 전문위원은 “2018년 이후 2년 동안 국내 개발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약을 개발해도 약가를 얼마나 책정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신약개발 비용의 구성에서 공공투자는 5%에 불과하며, 나머지 95%는 소수의 혁신형 제약기업이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신약의 급여와 약가 결정의 최종 결정자”라며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 조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를 우대하고, 제네릭과 개량신약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해야 한다”며 “기술수출과 신약수출을 균형감 있게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은 “직영도매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제도”라며 “건강한 시장구조를 왜곡하고, 약품비가 환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직영도매 이외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이어 “약을 선택할 권한은 의료인들에게 있다”며 “보험자 입찰제는 의료인들의 권한을 보험자에게 넘기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리베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의료인들의 전문 영역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김상일 일간보사의학신문 본부장은 “우리나라 의약품 입찰시장은 제네릭 의약품에 불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리지널 의약품은 안정적으로 처방될 수 있는 반면, 제네릭 의약품은 서로 경합을 거쳐 처방되는 구조”라며 “이런 구조가 제네릭 의약품 활성화와 유통구조 개선에 적합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의약품 공급과 구매 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거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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