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민생을 뒤흔들었다. 당장 학교도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고, 아이를 가진 가정은 어려운 경제여건에 더해 육아지옥에 빠져들고 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사관리사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도 국회도 일련의 현실을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일 영상 4도로 뚝 떨어진 기온에도 불구하고 가사관리사로 통칭되는 일명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산후도우미들이 대리운전사 등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노동자들과 함께 일터가 아닌 국회 앞에 손팻말 등을 손에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직자가 아닌 떳떳한 노동자, 근로자로 인정해달라는 뜻을 국회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가사노동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가와 사회, 가정에 필수인력, 고령·여성의 소중한 일자리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학대와 괄시, 핍박과 소외에 내몰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그 단초는 1953년 ‘가사사용인(가사노동자)’를 근로자에서 제외한 근로기준법을 70년 가까이 고치지 않는 정부와 일하지 않는 국회라고 비난했다.
가사노동자들과 연대해 근로기준법 개정 및 가사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해온 한국YWCA연합회 이은영 부회장은 연대사에서 “가사돌봄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제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없다면 가정이 정상적 사회생활·경제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진 실정이다. 하지만 수십년째 법적인 권리보장 없이 소외되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상황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될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고 별다른 출구전략도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할머니가 야간물류센터 등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30만명에 달하는 가사노동자들의 전체 수입이 평균 30%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42년생 만77세의 나이로도 여전히 현장에서 가사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김옥자 가사관리사는 “코로나 단계가 오르내릴 때 일자리도 요동친다. 일자리로 인정받지 못해 수입이 줄고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나 퇴직연금, 일자리지원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인격적으로 무시 받고 학대받고 있다”며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라고 외쳤다.
일련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동자들과 함께 국회를 찾은 최영미 가사노동자협회장은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매번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돼왔다. 이는 가사노동자에 대한 완전한 무시이자 말로만 여성존중을 외친 증거”라며 “21대에는 반드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을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나아가 노동자 보호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를 향해 “모든 것을 국회에서의 법 통과에만 미루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산업안전교육 ▲표준계약서 쓰기 ▲직업훈련 지원 ▲가사노동자 협동조합 육성 등 노동여건 개선과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시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편 현재 21대 국회에는 3개의 가사노동자 고용개선 및 보호 관련 유사법안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된 상태다. 가장 최근에 발의된 강은미 의원의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대한 법률안’은 가사근로자의 근로조건과 고용안정, 권익향상을 위한 제정법으로 노동자의 지위와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늘면서 가사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가사서비스시장은 직업소개소나 사인을 매개로 한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어 품질보증과 가사근로자 보호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법 제정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제안취지를 밝혀 공감대를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최 회장은 “정부와 집권여당, 정의당 등 야당이 모두 동의하는 무쟁점 법안임에도 국회의 무관심과 외면에, 때론 노동관련 쟁점사안에 밀려 지금까지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동의만 한다면 가사노동자들과 각 가정의 돌봄이 법적 보호아래 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부디 21대 국회는 국민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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