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수험생활 내내 “수능 끝나면”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대학이라는 단일한 목표만 바라보며 살았고, 그 목표만 이루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 선생님, 주변 어른들도 모두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찬란할 것만 같았던 스무 살에 고비가 찾아왔다.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강의실 대신 내 방 책상 앞에서 새 학기를 맞이했다.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힘없이 무너졌다. 그토록 바랐던 것이 사라지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방 한켠에서 강의를 듣다가 눈물을 훔친 날도 많았다. 속상함과 억울함에 강의와 과제를 미루는 일도 잦아졌다.
“수능 끝나면”이라는 희망은 “코로나만 아니었으면”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만 없었다면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냈을 텐데, 코로나만 없었다면 강의를 듣고 학문을 탐구하는 멋진 대학생이 됐을 텐데. 우울함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내는 시간만 늘었다.
의미 없는 몇 개월이 흐른 후, 늦여름 즈음이었을까. 본격적으로 학보사 활동을 시작하고 잠시 망각했던 오랜 꿈을 곱씹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원인은 코로나가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대학 입학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바라본 채 살다가,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한순간에 인생의 방향을 잃은 것이 문제였다. 이루고 싶은 게 없으니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해야 하고, 학점을 잘 받겠다는 절박함도 사라졌다. 목적 없는 발버둥이 결실을 맺을 리 만무하다. 코로나가 아무리 일상을 망가뜨렸다 해도, 명확한 인생의 목표와 의지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렸을까.
코로나가 내 머리 속 미로를 더 복잡하게 만든 건 맞지만, 애초에 미로가 생겨난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이 말을 되뇌며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새로 다잡고자 했다. 그런데 또다시 발목 잡혔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헤맸다. 모의고사 고난이도 문제의 풀이 과정은 달달 외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던 탓일까.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기 막막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청년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대입과 취업의 경쟁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새도 없이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진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며 ‘대2병’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만 가는 이유다.
치료법을 수없이 고민해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자아에 대한 고민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앞에 영원한 숙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삶이 바빠질수록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청년들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으면 한다.
스무 살의 끝자락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목표가 분명하지 않아 불안하다. 그러나 나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꿈 너머 꿈을 끊임없이 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가 ‘아주 멋진 어른’이 될 날을 손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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