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거리두기 2단계가 허락한 유일한 카페 “많이 와주세요”

[가봤더니] 거리두기 2단계가 허락한 유일한 카페 “많이 와주세요”

기사승인 2020-12-02 06:00:29
서울 마포구 한마음혈액원 헌혈카페 입구에 방문자 명부와 번호표 출력기가 놓여있다./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확산세를 진압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실시됐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은 언감생심, 외출조차 삼가야 하는 일상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방문이 권장되는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는 앉아서 쉬는 것은 물론, 편히 드러누워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한마음혈액원 헌혈카페에서 헌혈을 했다.

헌혈카페 입구는 체온계·손소독제·QR코드 인식기 등 방역 삼대장이 지키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체온을 측정하고, 손을 소독하면서 방문자 기록을 남겼다. 삼대장을 알현한 사람만이 비로소 뽑을 수 있는 대기 번호표는 아더왕의 검 같았다.

다음 순서는 전자 문진이다. 태블릿PC를 이용해 객관식 질문지를 작성하면 된다. 최근 일주일, 길게는 6개월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시간이다. 헌혈을 하려면 전날 5시간 이상 잠을 잤어야 한다. 3~4일 내 항생제성 감기약, 1개월 내 여드름약이나 탈모약 등을 복용했다면 헌혈을 할 수 없다. 일주일 내 보톡스 시술을 받았거나, 6개월 내 피어싱과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도 헌혈을 못 한다. 여드름을 방치하고, 잠만 많이 잔 덕에 무사히 문진을 통과했다.

채혈 전 상담 중 혈액 샘플을 채취한다.

혈압을 측정하고 나면 간호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헌혈 전 상담을 통해 헌혈 가능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단계다. 신분증 확인과 과거 헌혈 기록 조회가 이뤄진다. 가장 최근 헌혈은 지난 2014년 00고등학교. 학교에 나타난 헌혈버스에서 헌혈을 하고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카트라이더 전자파 밴드와 풍선 아이템을 산 기억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1년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전혈헌혈은 최대 5회다. 한 번 헌혈을 하면 8주가 지나야 다시 할 수 있다. 무려 6년간 헌혈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참회의 순간이 지나가면 손가락을 딴다. 샘플 혈액 한 방울을 채취해 혈액형, 혈액비중, 혈색소 수치 등을 측정한다. ‘철분 수치’로 알려진 혈색소 수치가 12.5(g/dL)이상이면 전혈헌혈을 할 수 있다. 12 이상 12.5 미만이면 성분헌혈만 할 수 있다. 12 미만으로 떨어지면 헌혈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기사를 엎어야 하는 재앙을 마주하게 된다. 결과는 O형에 혈색소 수치는 13.8이었다. 헌혈을 위해 전날 순대와 간을 먹은 효과였을까.

상담을 마치고 320ml 전혈헌혈을 하기로 했다. 성분헌혈은 혈액에서 혈장이나 백혈구만 채취하는 방식이다. 혈액에서 채취한 성분 외 나머지 성분은 다시 헌혈자의 몸에 돌려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전혈헌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약 20분이 걸린다. 

채혈을 기다리며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접수도 할 수 있다.

채혈을 기다리는 동안 대기석 테이블에 놓인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등록’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조혈모세포는 골수 내부에서 혈액을 만들어내는 세포다. 백혈병이나 혈액암 환자들은 완치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한다. 이식을 하려면 환자와 공여자의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해야 하는데, 일치 확률은 부모 5%, 형제자매 25%로 가족간 이식이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혈연이 아닌 타인과 HLA가 일치할 확률은 무려 0.00005%다. 공여가 가능한 비혈연 환자를 만나는 기증 희망자는 2만명 중 1명인 셈이다.

나는 쌍란만 담긴 계란 한 판을 산 경험이 있다. 쌍란 1개의 생성 확률은 1000분의 1로 알려졌다. 단번에 30개의 쌍란을 얻은 자의 운은 수치화할 수 없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등록서를 작성했다. 접수를 도와준 김남훈 한마음운동본부 생명운동센터 활동가는 “HLA가 일치하는 환자와 기증 희망자가 연결되더라도, 기증 희망자의 건강 상태와 의사를 재차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실제 공여로 이어지기까지 과정이 매우 지난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혈모세포 공여를 굉장한 행운이자 축제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채혈실에 들어서면 채혈석에 앉아 팔을 걷고, 바늘을 꼽는다. 채혈 중에는 별다른 통증이 없었다. 원활한 혈액 이동을 위해 손을 쥐고 피는 운동을 반복했다. 채혈석은 앉은 듯 누운 듯 안정적인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언제든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보조 테이블도 설치됐다. 근래 앉아본 의자 중 가장 안락하고 편안했다. 취재가 아니라면 당장 잠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간호사 선생님이 헌혈 후 주의사항과 상품이 나열된 안내문을 건넸다. 헌혈 카페에서 헌혈을 마치고, 커피 파는 카페도 들를 날을 기약하며 커피 쿠폰을 선택했다.

원활한 혈액 이동을 위해 스펀지 공을 쥐고 피는 운동을 반복했다.

원래 한마음혈액원은 헌혈에 참여한 사람에게 상품 1종을 증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품을 2개씩 증정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는 헌혈 희망자의 집으로 이동 차량을 보내주는 ‘프라이빗 픽업 서비스’도 시작했다. 호텔 숙박권, 아쿠아리움·서울스카이 전망대 입장권 등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그룹 트와이스와 가수 송민호의 팬들은 헌혈 상품으로 사용하라며 음반을 기부했다. 모두 헌혈을 독려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오후 3시 헌혈카페를 나섰다. 취재를 위해 사용한 시간을 제외하면 헌혈에는 약 30분이 소요됐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헌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절차가 간단했다. 8주 후 점심으로 순대와 간을 먹고 헌혈카페에 다시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1일 기준 국내 총 혈액보유량은 3.5일분, 혈액수급 위기단계 '관심' 수준이다. 적정 혈액보유량은 5일분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혈액보유량은 연일 관심 단계에 머물렀다. 지난 5월13일에는 혈액보유량이 2.7일분까지 떨어져 ‘위기’단계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송이 한마음혈액원 혈액기획팀 과장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헌혈을 단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과장은 “헌혈을 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1건도 없었다”며 “방역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고, 면허를 가진 의료진이 헌혈을 진행하기 때문에 헌혈을 통해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성 질환에 노출될 위험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한 과장은 “평소에도 헌혈을 자주 하지 않았는데, 굳이 ‘이 시국’에 헌혈을 하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며 “지금이야말로 헌혈이 절실한 시국”이라고 강조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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