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전프’ 이후 500일이 흘렀다

‘애전프’ 이후 500일이 흘렀다

기사승인 2020-12-04 08:00:02
▲사진=Mnet 제공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애미들 전부 프추 눌러. 투표수 차이 똑같은 거 뭐임?” 지난해 7월20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프로듀스 X 101’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물의 제목이다. 해석하자면 “(전날 방송한 ‘프로듀스 X 101’ 최종) 투표수 차이가 동일한 것이 이상하니, (이 글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게시글 추천을 누르시오.” 정도다.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이하 ‘프듀X’) 최종 순위 결과에서 1-2위, 3-4위, 6-7위, 7-8위, 10-11위의 득표 차이 수가 2만9978표로 같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린 이 글은 게시판 이용자들의 추천과 함께 온라인 상으로 퍼져나갔다. Mnet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논란에 불이 붙은 순간이다. 

Mnet ‘프로듀스’ 시리즈는 2016년부터 총 네 개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2016년 1월22일 첫 번째 시리즈인 ‘프로듀스 101’을 시작으로 이듬해 남성판인 ‘프로듀스 101’ 시즌2가 방영됐고, 2018년 일본 유명 그룹 AKB48의 시스템을 결합한 ‘프로듀스 48’과 2019년 시즌4인 ‘프듀X’까지 전파를 탔다. 첫 시즌부터 시청자의 참여를 동력 삼은 ‘프로듀스’ 시리즈는 매 시즌 뜨거웠다. 시청자 투표를 통해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는 콘셉트가 주효한 덕분이다. 시청자는 응원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단순히 표를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고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경품을 내걸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이처럼 ‘국민 프로듀서’라고 명명한 시청자를 방송에 끌어들이며 성공했다. 하지만 이처럼 적극적인 팬덤이 투표 결과에서 의심스러운 수치를 발견하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투표’와 ‘참여’로 ‘프로듀스’ 시리즈의 인기를 만든 사람들은 ‘추천’과 ‘댓글’로 이상한 상황에 ‘이상하다’는 목소리를 냈다.논란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던 Mnet 측은 나흘이 지나서야 “득표수를 집계 및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지만, 최종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Mnet의 무성의한 입장에 시청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법무법인 마스트(MAST)는 프로듀스X 01 진상규명위원회 등 260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CJ ENM 소속 ‘프듀X’ 제작진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속사 관계자들 일부를 사기의 공동정범 혐의 및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의 공동정범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온라인서 모인 진상위는 Mnet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미가공 데이터를 받아내 의혹 사실 여부를 밝히고, 투표 결과가 조작됐을 경우 Mnet의 사과와 후속조치를 받아내는 것을 1차 목표로 세웠다. 변호사 선임을 위한 후원 금액 모금은 1시간여 만에 달성됐다. 이들은 “투표 집계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 밝혀진 이상, 투표 결과가 정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시청자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증명할 의무가 있다”며 “투표조작 의혹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힘으로써 추후 재발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 및 엄중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최종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라고 못을 박았던 Mnet 측도 태도를 바꿔 2019년 7월26일 “자체조사로는 사실 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다”면서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2019년 7월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CJ ENM 사옥의 ‘프듀X’ 제작진의 사무실과 문자 투표 데이터 보관 업체 등을 압수수색했다. 아울러 복수의 언론을 통해 ‘프듀X’ 외 다른 시리즈에서도 투표 조작이 의심된다는 정황이 보도됐다.

최초 의혹 제기 이후 109일, ‘프듀X’ 최종회 방송 110일 만에 사건의 주요 인물이 구속됐다. 2019년 11월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프로듀스’ 시리즈를 연출한 안준영 PD와 총괄 책임자인 김용범 CP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Mnet 측은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인 사과의 뜻을 밝히고 “앞으로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안 PD가 ‘프로듀스 48’과 ‘프듀X’ 의 투표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의혹이 실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조사 끝에 검찰은 2019년 12월3일 ‘프로듀스’ 시리즈 전 시즌에서 조작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2019년 12월 30일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는  취재진 앞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Mnet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얻은 수익과 향후 발생할 수익을 모두 음악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K팝 지속 성장을 위해 쓰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허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오디션 프로그램 순위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연습생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고 보상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지난 5월29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안 PD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3700만원을, 김 CP에게 징역 1년9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보조PD와 기획사 임직원 5인에게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지난달 18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는 1심 선고가 유지됐다. 안 PD 등은 ‘프로듀스’ 시리즈 전 시즌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들을 탈락시키거나 혜택을 준 혐의를 받는다.

약 500일.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거쳐 의혹을 제기했던 목소리는 행동으로, 해명은 사과로, 재판 결과는 실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실질적 피해 보상이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투표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참가자들의 명단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순위조작으로 탈락한 연습생이 누군지 밝혀져야 피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CJ ENM은 공식입장을 내고 “이번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자체적으로 파악한 피해 연습생에게 대해 피해 보상 협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면서 “일부는 협의가 완료됐고, 일부는 진행 중”이라고 알렸다. 유료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들의 배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달 25일 검찰과 안 PD의 변호인 등 양 측이 같은 날 상고장을 제출하며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최종 받게 됐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