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알루미늄 음료 캔에 점자 표기가 정확히 그리고 자세히 되어 있지 않아서 시각장애인이 불편을 겪는다는 글에서 출발합니다. 캔 위에 작게 새겨진 점자가 똑같이 ‘음료’로만 표기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커피도 탄산도 이온음료, 주스도 모두 음료라고만 적혀있는 상황. 쿡기자가 30여 년간 마셔왔던 캔 음료를 떠올려 봅니다. 당장 십수 개의 종류, 수십 가지의 브랜드가 스쳐 갑니다.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마트에 가 음료 진열대 앞에 섰습니다. 비슷한 위치에 찍혀 있는 점자들, 종류 역시 음료·탄산·맥주 두 세 가지에 그쳤습니다. ‘캔커피를 사겠다’ 다짐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위치를 확인하고 팔을 뻗었는데도 손에 쥐어진 건 주스였습니다. 그날만큼은 주스가 달지 않았습니다.
음료만의 문제일까요. 불행히도 안타까운 상황은 일상생활 전반에 깔려 시각장애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우리나라는 음료를 포함한 식재료, 생필품, 가전제품 등에서 점자를 확인하기 매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샴푸 하나를 살 때도 이것이 샴푸인지, 어떤 샴푸인지, 용량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의약품에서도 점자표기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 2017년 국립국어원에서 실행한 점자 표기 기초 조사를 살펴볼까요. 당시 의약품은 조사 대상 146개 중 점자가 표기된 것은 30개, 이마저도 적절하게 표기된 것은 10개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처방전을 읽을 수 없고 약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이에 따른 문제는 약물 오남용 등의 안전과 직결됩니다.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죠.
초반 쿡기자가 가졌던 의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요. 일단 시각장애인이 실생활에서 점자를 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관련 법과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의약품뿐만 아니라 편의시설, 가전제품 및 생활용품에 관해서도 점자 표기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을 찾아 개정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또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점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점자 표기 기술의 연구와 개선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큰 구덩이는 주위를 살피며 피해갈 수 있지만, 살짝 솟은 보도블록은 눈치채기 쉽지 않습니다. 허벅지까지 오는 바위보다 발에 채는 자갈에 넘어질 때 좌절감이 크기도 하고요. 하물며 장애인은 어떨까요. 우리 사회의 시스템 밖에서 매일 같이 전투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입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더운 여름날 수많은 음료 중 콜라를 집어 들 수 있는 선택권, 코카콜라와 펩시 중에서 기호에 맞는 브랜드를 고를 수 있는 권리를 시각장애인에게 줘야 한다는 겁니다. 제대로 표기된 점자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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