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2’가 남긴 질문 [TV봤더니]

‘미스트롯2’가 남긴 질문 [TV봤더니]

기사승인 2020-12-24 07:00:16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TV조선의 인기 트로트 오디션 시리즈 ‘내일은 미스트롯2’(이하 미스트롯2)가 지난 17일 성공적으로 막을 올렸다. 첫 회 시청률은 28.6%(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로, 올해 초 방송한 ‘내일은 미스터트롯’ 첫 회 기록보다 두 배 이상 높다. 3시간여의 러닝타임도 감탄과 감동과 웃음의 홍수 속에서 빠르게 흐른다. 하지만 TV를 끄고 나면, 흥분이 차지하던 자리를 물음표가 대신한다.

▲ ‘내일은 미스트롯2’ 오프닝
■ 절박한 참가자, 방송사의 역할은

‘미스트롯2’는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흰 원피스 차림이던 참가자들이 돌연 옷을 찢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채 춤을 추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트롯 잔치는 빨간 맛이 제 맛”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시즌에서 비판 받았던 참가자의 신체를 향한 카메라의 노골적인 시선, 외모를 품평하는 자막은 다소 수그러든 듯 보이지만 마음을 놓긴 이르다. 몸매를 강조한 포즈나 어깨에 두른 띠처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이식한 콘셉트는 여전하고, 첫 회 말미에 등장한 예고편에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채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이 여럿 등장했다. ‘미스트롯’ 시리즈를 제작한 TV조선 서혜진 본부장은 지난해 이 프로그램 첫 시즌에서 선정성 논란이 불거지자 “무명의 현실과 무대와 생계에 대한 절박함 보여주는 위악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선정성 안에 진정성을 봐 달라”(뉴스1 인터뷰)고 했다. 단 한 번의 관심이 갈급한 참가자에겐 신체 노출이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선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이 제작진의 몫이자 역량이다. ‘미스트롯2’의 선택은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 초등부 전원이 예선에서 합격하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 어려진 참가자, 이대로 괜찮을까

아동·청소년 참가자가 늘면서 ‘미스트롯2’는 기존 유소년부를 초등부와 중·고등부로 나눠 심사하기로 했다. 첫 회에 등장한 초등부는 총 7명으로 전원이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모든 심사위원에게 합격을 받았을 만큼 실력이 출중한데다가, ‘성인 가요’로 불렸을 만큼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트로트를 어린이 가수들이 구성지게 불러내는 모습은 분명 감탄스럽다. 하지만 친구들과 달리 자신만 올 하트를 받지 못하게 되자 속상함에 눈물 흘리는 참가자의 모습이나, 극도의 긴장 속에서 최종 합격 여부를 기다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귀엽다거나 감동적이라는 감상이 차라리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보다는 냉혹한 경쟁의 세계, 오직 합격과 불합격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의 세계, 그리하여 참가자로 하여금 경험주의자가 아닌 완벽주의자가 되길 요구하는 세계로 이 어린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진정 옳은 일인지를 질문하게 된다. 한편, 어린이 참가자의 말과 행동을 전달하는 방법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이서원 양이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 정동원의 팬이라고 밝히자, 제작진은 ‘스캔들’ ‘로코 드라마’ 같은 자막을 달며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애적으로 연출했다. 예능을 위한 장치였다고는 해도, 출연자의 발언을 이처럼 ‘초월 번역’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걸까.

▲ ‘미스트롯2’에 참가한 그룹 씨야 출신 가수 김연지
■ 그 때 그 가수, 지금은 어떻게 살까

‘미스트롯2’의 또 다른 특징은 현직 연예인의 참여가 특히 많다는 점이다. 트로트 가수들로 꾸려진 현역부 2팀을 비롯해 아이돌부와 왕년부가 있고, 타장르부와 직장부는 물론, 마미(엄마)부에도 가수·배우·방송인 등이 포진했다. 그 중에서도 도합 데뷔 187년 차를 자랑하는 왕년부 참가자들은 ‘미스트롯2’ 출연이 새로운 도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댄스·알엔비·발라드 등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장르를 벗어나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는 의미에서다. ‘K팝’이라는 이름과 함께 아이돌 음악 중심으로 가요 시장이 재편되면서, 이들 대부분의 활동은 최근 눈에 띄게 줄었던 터다. 보컬그룹 씨야를 가장 아꼈다던 작곡가 조영수는 참가자로 나선 씨야 출신 김연지를 보고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과 씨야로 계속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같이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청자 또한 그와 비슷한 마음일 게다. 옛 동료를 심사해야 하는 복잡한 심경에 눈물바다가 된 심사위원석을 보면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몇 몇 가수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출중한 실력으로 한 때 자신만의 영역을 일궜으나 이제는 TV나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들을 말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오락 시장과 짧아진 연예인의 수명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회’를 찾아 ‘도전’을 이어갈까.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스트롯2’는 화려한 쇼 비즈니스 산업의 이면을 곳곳에 새긴 채 굴러간다. 참가자들의 ‘내일’은 과연 안녕할 수 있을까.

wild37@kukinews.com / 사진=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 방송 화면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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