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에서 시작한 학교폭력 논란이 연예계로 번진 모양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유명 연예인의 학창시절 폭언·폭행·따돌림 등이 폭로되면서, ‘학교폭력 가해자를 연예계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해자들이 ‘과거 세탁’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의 활동을 접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린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들어 온라인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은 10명 이상이다. 이달 초 가수 진달래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출연 중이던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 하차한 데 이어, 최근 배우 조병규가 입길에 오르면서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학폭 폭로’에 불이 붙었다. 20일과 21일 이틀 동안만 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수진, 배우 김동희, 박혜수 등 여러 연예인의 학창시절을 폭로하는 글이 줄을 지었다.
각 소속사는 일단 의혹을 부인하는 분위기다. 조병규 측은 온라인에서 제기된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며 해당 글을 작성한 누리꾼들을 모욕 및 허위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수진·김동희·박혜수·김소혜·진해성 등 의혹을 받는 다른 연예인들도 ‘학교폭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선을 그으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 같은 강경 대응이 도리어 역풍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증거가 없으니 발뺌한다’는, 일명 ‘괘씸죄’가 추가돼서다.
‘학폭’은 기획사 입장에서도 다루기 까다로운 위험 요소다. 청소년 연습생·연예인이 많은 가요 기획사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를 확인하거나 담임 선생님과 면담해 학교 폭력가담 여부를 확인하는 곳도 있지만, 기록되지 않은 사생활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폭’ 이력을 검증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사자의 고백인데, 어느 누가 비행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겠냐는 것이 기획사 관계자들의 고민이다.
여기에 연예인의 인성을 재능의 일종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학폭’ 가해자로 거론된 연예인이 소속사에서 방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2년 전 Mnet ‘프로듀스X101’에 연습생 윤서빈을 내보냈다가, 그가 학창시절 동급생에게 폭력을 저질렀다는 주장이 나오자 “회사의 방침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그와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밴드 잔나비 멤버였던 유영현도 학교폭력 사실이 까발려지자 팀에서 탈퇴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의 학교폭력 폭로는 그간 억눌렸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인상을 준다. 피해자가 혼자서 괴로워하던 일을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알리면 여론이 형성되고 그것이 (프로그램 하차·소속사 방출 등) 결과로까지 이어지다보니, 묵혀뒀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봤다.
이어 “‘학폭’ 폭로가 사회적인 이슈로 관심 받으면서 ‘과거의 일이 언제든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학교폭력 자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음해를 위해 허위로 폭로하는 행위가 벌어진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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