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리포트] 궁핍한 백신

[안태환 리포트] 궁핍한 백신

글·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 

기사승인 2021-04-25 08:00:31
오래전 미국에 이민 간 지인에게 코로나19로부터의 무사안녕을 물은 건 지난겨울이었다. 흐드러지게 봄꽃이 만발한 근간엔 그의 백신 접종을 마냥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은 세계 최대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해왔다. 3200만 명 이상이 감염됐고 58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랬던 미국이 전 국민 접종률 40%에 실외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격세지감이다. 

최근 들어 3차 추가접종을 의미하는‘부스터 샷’까지 거론하는 미국의 백신 여건은 여태 전 국민의 3프로 접종에 불과한 우리 처지를 초라하게 한다. 세계 10위 경제력으로 늘 상 모든 경제지표 상위권에 자리했던 대한민국은 백신 접종 시작 순위에선 104번째로 한참 뒤처졌다. 접종률에선 아프리카의 르완다 수준이란다. 선진국 클럽이라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35위로 쳐져 있다. 이스라엘의 마스크 없는 일상은 선망의 유토피아가 되었고 일일 천여 명에 다시금 다가가는 확진자 수는 4차 대유행의 기로에 서있다.  

전 세계 인류 13프로에 불과한 선진국들이 전체 백신 생산량의 절반을 가져간 이 모질고 독한 백신 불평등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코로나 백신이 인류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예상했다. 미국 듀크 글로벌 헬스 이노베이션 센터도 아프리카를 위시한 제3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202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백신을 맞을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 예측은 정확히 적중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상 방류를 모르쇠로 일관하다 적극적 중재를 요청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이를 거부한 혈맹 미국의 처신은 못내 불편했다. 급기야는 백신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는 우리 정부의 백신 스와프 제안마저도 미국 측의 반응은 시큰둥이다. 백신 여유가 없으며 급기야는 백신 자국민 우선주의에 입각해 백신 수출마저 고려하겠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 들여온 백신은 화이자 80만 명, 아스트라 100만 명 분 뿐이다. 5월에 2000만 명 백신을 공급하겠다던 미국 제약사 모더나도 함흥차사이다. 대략난감이다.

1957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의 절정에서 러시아는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을 쏘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러시아 국립 가멜리아 전염학 및 미생물학 센터는 그 이름을 차용하여‘스푸트니크 V’를 개발하였다. 뒤에 붙은 V는 전 세계 백신 개발에서 승리(Victory)했다는 의미란다. 이 백신은 지난 2월 세계적 의학권위지‘랜싯(the Lancet)’에 3상 결과가 게재되어 그 효능을 알렸다. 랜싯은‘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과 함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학 분야의 학술지이다. 발표된 내용은 2만 명 대상 접종 결과, 91.6% 놀라운 예방효과를 거둔 것이다. 세계 62개국에서 '스푸트니크 V'를 승인하였다. 독일은 한발 앞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유럽의약청(EMA)도 심사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 안전에 세계인의 불안이 커지고, 미국이 추가접종을 한다며 자국이 개발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부도 스푸트니크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백신 부족을 타개할 마땅한 묘책이 없는 가운데 현실 가능한 선택지일 듯싶다. 그러나 아무리 백신 기근이라지만 스푸트니크도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과 같은‘아데노바이러스 벡터’방식을 사용하여 혈전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상존한다. 아무리 급해도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그 과정은 더 요란해도 좋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천명한 11월 집단면역은 힘겨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내년 여름이 되어서야 가능한 목표라고 암담한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향후 상황이 어떤 추이로 전개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백신 접종이 한참 늦은 건 분명하다. 문제는 집단면역이 늦어질수록 고용 빙하기에 접어든 청년 실업과 생계를 위협당하는 자영업자의 고통은 더해질 것이다. 궁핍하기 그지없는 백신 사태가 우리 국민들의 삶의 무게가 되지 않도록 정부의 분발을 촉구 드린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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