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입맛대로 주는 채용 정보에 눈물 나는 취준생 [고스펙 사회②]

기업 입맛대로 주는 채용 정보에 눈물 나는 취준생 [고스펙 사회②]

구직자 스펙,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과 불일치
“기업 입장에서만 채용 공고 내기 때문”
한국, 채용 공고 기준 가이드라인 미흡해

기사승인 2024-09-21 17:03:17
쿠키뉴스는 기성 언론의 책임과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언론인 활동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예비 언론인들에게 콘텐츠 구현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지난 1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콘텐츠 기획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기사는 공모전에서 당선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대학언론인이 쿠키뉴스의 멘토링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스펙=고고익선. 스펙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최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1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취업 준비생들의 고스펙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마음을 파고든 취업 사교육, ‘스펙 쌓기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정부는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청년 고용률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 청년들이 스펙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 청년 취업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한다. [편집자주] 

전남 순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취업 준비생이 토익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문채연

“사실 추가 자격증은 굳이 따지 않아도 됐는데…”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황준원(27)씨가 딴 자격증은 ‘건축 기사 자격증’ 하나였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해당 자격증만 필수로 요구하기 때문에 충분한 스펙이라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평균 이상의 학점, 어학 성적, 직무 관련 활동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황씨는 몇 번의 서류 탈락을 겪으면서 본인이 스펙이 충분한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취업 정보만으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서류 전형에 합격한 친구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가 가진 추가 자격증이 합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황씨는 추가로 ‘건설안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씨는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기 이전에 제출한 서류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맞는 취업 전략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스펙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며 “자신보다 나은 스펙을 가진 친구의 합격 소식을 듣고, 그 스펙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올해 상반기 정기 공개채용 과정에서 황준원씨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진=정세진

이처럼 치열한 취업 시장에서 구직자들은 부족한 스펙을 보완하려 하지만, 정작 기업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경우가 많다.

지난달 19일 ‘교육의 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들은 영어 성적(92%), 자격증(94%), 인턴 경험(96%)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스펙보다는 지원자가 기업과 직무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격증(54%), 영어(46%), 인턴 경험(42%)만이 주요 평가 요소로 꼽혔다.

현재 기업 인사팀에 재직하고 있는 정민홍 화승 코퍼레이션 PEOPLE 팀장은 이 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기업의 불투명한 채용 정보’와 ‘정보의 불균형’을 꼽았다. 정 팀장은 “자신이 원하는 직무가 어떤 일인지, 그리고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잘 이해해야만 효과적인 취업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기업들은 구직자에게 충분한 직무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공고 플랫폼에 게시된 한 기업의 채용 공고 캡처. 채용 직무 분야와 관련 전공이 기재돼 있으며, 이외에 직무 설명은 없다.

잡코리아의 ‘1000대 기업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A 기업은 모집 분야를 ‘생산·품질관리’로 기재하고, 담당 직무 또한 ‘생산·품질관리’라고 적었다. 자격 요건 및 우대 사항에는 ‘초대졸 이상’, ‘관련 학과 졸업자’라고만 간단히 명시했다. 또 다른 B 기업은 우대 사항으로 ‘관련 자격증이나 공모전 수상 경험’만을 기재했다.

이에 정 팀장은 “기업에서 쓰는 부서명이나 하는 업무를 단순하게 공고하는 경우”라며 “이는 기업의 문제로, 자사의 입장에서만 채용 공고를 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원자들은 불충분한 정보로 혼란을 겪고 범용적인 역량, 즉 소위 스펙에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구직자의 입장에 서서 직무 분석에 기반한 상세한 직무 내용과 자격 조건 및 우대사항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법적 가이드라인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014년 1월 제정된 ‘채용절차법’은 채용 과정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구직자의 부담을 줄이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중요한 조항은 제4조(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 제4조의2(채용강요 등의 금지), 제4조의3(출신지역 등 개인정보 요구 금지) 등에 그쳤다. 채용 공고 작성 기준을 제시한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호주는 각 주와 지역에서 차별 금지법 및 공정한 고용 관행을 통해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주 정부는 채용 절차와 관련된 가이드라인 ‘A Step-by-Step Guide to Preventing Discrimination in Recruitment’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직무 설명서를 작성할 때는 모든 잠재적 지원자가 직무의 기술적 요구사항과 책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직무의 주요 기술과 의무를 상세히 기재하여 지원자들이 자신이 이 직무에 적합한지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명확한 직무 설명은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높이고 차별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호주는 이러한 원칙을 통해 모든 지원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채용 절차의 투명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채연 기자, 정세진 기자, 안지민 기자
styleofkyte@gmail.com
문채연 기자
정세진 기자
안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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