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러한 ‘정상가족’을 전제로 복지 제도를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 정책 지원 대상에서 빠집니다. 고용·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고, 응급수술이 필요할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할 수도 없고요. 출산하거나 아팠을 때 쓸 수 있는 출산 휴가와 돌봄 휴가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택정책에서 신혼부부 대상의 특별공급 요건, 세대의 정의, 부양가족 가산점에서 제외됩니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가족을 정의하고 이들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안이 바로 ‘생활동반자법’인데요. 이번 [알경]에서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10명 중 6명(61.0%)은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혼인·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10명 중 7명(69.7%)이 동의했고요. 응답자의 70.5%가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새로운 가족형태로 1인가구가 늘고도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는 전체 가구 중 31.7%입니다. 2인가구 비율인 28%보다 높은 수준인데요. 연령대별로 보자면 2030세대와 6070세대의 비중이 높게 나타납니다. 미혼(혹은 비혼)가구와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지내는 고령 가구가 많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청년 1인가구의 59%가 임차 주거 형태입니다. 고령 가구는 상대적으로 자가 비율은 높았으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진행 상황은
국내 정치권에서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반자등록법이 공약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발의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의 PACS와 유사하게 소중한 한 사람과의 계약을 통해 공동생활을 보장하도록 하는 안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생활동반자법 또는 생활동반자 조례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올해 있었던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공약으로 제출된 바 있습니다.
해외 선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최초의 시민결합은 1989년 덴마크에서 파트너십등록제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2012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며 기존 제도를 통합·폐지했습니다. 10년 뒤 프랑스도 시민연대협약(PACS)을 법제화했습니다.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의 결합까지 보장한 첫 시도였습니다. 독일은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스웨덴은 2003년 동거인법을 마련해 연인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법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독일은 동성에 한해서만 동반자 등록을 허용해 동성결혼 합법화의 전 단계로 기능케 했다면, 스웨덴은 성별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어요.
최근 여성가족부는 ‘2025 세상 모든 가족 함께’라는 명칭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안을 발표했습니다. 혈연·혼인·입양 관계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모두 사회적 돌봄 체계 안에 속할 수 있도록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려는 계획안이죠. 우선 비혼부의 단독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하고, 비혼 여성의 단독 출산에 대한 제도 개선도 검토할 예정입니다. 또 자녀의 성(姓)을 결정할 때 아버지 성을 기본으로 두지 않고 부모 협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동을 ‘혼외자’와 ‘혼중자’로 구별하는 차별적 용어도 바뀐다고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달라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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