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졸업파티) 퀸’인 여자주인공과 운동선수인 남자주인공, 잘나가는 친구들, 화사한 색감 등 ‘덤덤’ 뮤직비디오는 2000년대 유행하던 미국 하이틴 영화의 클리셰를 재현한다. 전소미는 앞서 신곡을 언론에 소개하는 자리에서 “(‘덤덤’은) ‘하이스쿨 뮤지컬’ 같은 곡”이라며 “저에게 찰떡 같이 잘 어울리는 콘셉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에 사용된 소품이나 의상 스타일링에도 전소미의 아이디어가 반영됐다고 한다.
반전은 있다. 전소미는 이 모든 행동이 “영혼까지 끌어 떠는 내숭”이며, 자신은 “네 머리 꼭대기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비웃는다. “원래 많이 못 먹어요 / 양이 적어서”라는 가사 뒤에는 친구들과 피자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벌레는 절대 못 잡아요 / 너무 무서워”라고 노래하다가도 벌레를 보면 식칼을 꺼내드는 식이다. 소녀가 돌변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음악의 채도도 바뀐다. 풍선껌처럼 발랄하고 아기자기한 멜로디에 제동이 걸리고, 낮고 건조한 싱잉 랩이 이어지며 서늘한 느낌을 준다.
전소미는 이런 돌변을 ‘비꼬기 전략’이라고 소개한다. 이 곡 작사에도 참여한 그는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을 통해 “청초하고 연약한 여자의 모습이 공식처럼 정해졌다고 생각한 노래 속 소녀를 위해, 가사를 비꼬는 형식으로 바꾸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어리숙한 소녀의 복잡한 마음과 그런 소녀가 나름 만들어놓은 계획들을 재밌게 표현하려고 했다”며 “뮤직비디오를 보시면 비꼬는 가사의 포인트를 한 번에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네가(혹은 너희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연약하고 청초하며 순수하고 겁이 많은 나는 내가 연기하는 나일뿐, 진짜 내가 아니다.’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여성 아이돌의 선언은 그 자체로 도발적이다. 다만 전소미의 이런 시도는 뮤직비디오가 정의한 ‘해피엔딩’에 가로막혀 풍자하려는 대상을 직격하지 못한다. 뮤직비디오에서 전소미가 연기한 소녀는 “영혼까지 끌어 떠는 내숭” 덕에 소년과 연인이 된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계산하고 연기해야 하는 소녀의 처지는 그대로다. “머리 꼭대기 위에서 춤” 추는 사람이 정말 소녀일까. 전소미는 “네가 사랑에 빠진 건 내 계획”이라고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