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함과 난해함 사이, 유영진의 노랫말들 [광야의 딸 에스파③]

비범함과 난해함 사이, 유영진의 노랫말들 [광야의 딸 에스파③]

기사승인 2021-10-16 06:00:01
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쿠키뉴스] 김예슬 기자 =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에스파 ‘블랙 맘바(Black Mamba)’)
“블랙 맘바가 만들어낸 환각 퀘스트 에스파, 아이(æ)를 분리시켜놓길 원해” (에스파 ‘넥스트 레벨(Next Level)’)
“나를 무너뜨리고 싶은 네 환각들이 점점 너를 구축할 이유가 돼” (에스파 ‘새비지(Savage)’)

이들 가사는 그룹 에스파의 메타버스 세계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광야를 떠돌며 에스파와 그들의 아바타 아이(æ)의 결속을 끊으려는 블랙 맘바의 위협. 에스파의 이 장대한 세계관은 타이틀곡 가사를 통해 조금씩 전달된다. 에스파의 가사는 SMCU(SM Culture Universe)로 진화한 SMP(SM Music Performance)의 확장판이자 ‘SMP의 아버지’ 유영진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에스파 세계관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그의 가사에는 역사가 있다. 비범하면서도 난해한 그의 가사는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강한 힘을 가졌다. 여기, 유영진 표 가사에 귀를 기울여보자.

△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H.O.T.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그룹 H.O.T. 데뷔곡 ‘전사의 후예’는 SMP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당시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학교 폭력에 강한 화두를 던졌다.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 하나 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라는 직설적인 후렴과 “절대적인 힘 절대 지배함 내 의견은 또 물거품”, “인생은 선착순으로 매겨진다는 것” 등 가사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한 초기 SMP의 방향성 그 자체다. 노래로 담아낸 유영진의 분노는 이후 ‘열맞춰!’·‘아이야’(H.O.T.), ‘해결사’(신화), ‘트라이앵글(Tri-angle)’·‘"O"-正.反.合.’(동방신기), ‘걸스 온 톱(Girls On Top)’(보아), ‘돈 돈!(Don't Don)’(슈퍼주니어), ‘마마(MAMA)’(엑소) 등으로 이어진다.

△ “난 내 세상 있죠 Peace B is my network ID” (보아 ‘아이디 피스 비(ID;Peace B)’)

사이버 세계의 시작을 알린 밀레니엄 초기, 2000년에 발표된 보아의 데뷔곡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는 SMCU의 기원과도 맞닿아있다. 에스파로 시작된 SMCU 세계관 소개 영상 ‘SMCU the origin’에는 창세의 과정을 언급하는 장면에 ‘아이디 피스 비’의 뮤직비디오 일부가 삽입됐다. ‘아이디 피스 비’의 세계는 아이-에스파(æ-aespa)가 머무는 가상세계와도 연관돼 있다. “우린 달라요 갈 수 없는 세계는 없죠”, “하나로 담긴 세상 connecting in my neverland 이젠 멈출 수가 없어요.” 당시 사이버 세상을 이해 못하던 기성세대를 겨냥한 이 가사는 20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연결되며 MZ세대를 모두 엮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SMCU the origin’ 캡처, SM엔터테인먼트 제공

△ “미소 한 번쯤만 내게 줘 봐요 그날 바로 급 노예 모드” (샤이니 ‘아미고’)

극과 극을 달리는 유영진의 가사 세계에서 ‘아미고’는 그가 작사한 사회비판 곡들과 대척점에 선 대표적인 노래다. “미친 미모 가진 너는 숭배받아 마땅”, “와 차갑다 차갑다 얼음공주 오셨다”, “그날 바로 급 노예 모드”, “오금 저리고 얼어붙어” 등 난해한 노랫말은 발매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가사로 통한다. 제목부터 ‘아름다운 미녀를 좋아하면 고생한다’의 약자다. 이외에도 “불꽃 카리스마 민호 My name is 민호”(‘더 샤이니 월드(The SHINee World)’), “넌 가끔씩 그런 고정 이미지를 탈피 일탈해 봐 괜찮다”(‘링딩동’), “훤히 들여다보고 뇌를 만져 바보 된 것 같아”(‘루시퍼’) 등 유영진이 창조한 범상치 않은 표현들이 샤이니의 역대 타이틀곡에 담겼다.

△ “독창적 별명 짓기 예를 들면 ‘꿍디꿍디’” (f(x) ‘NU 예삐오 (NU ABO)’)

대중에게 엉뚱하면서도 키치한 에프엑스(f(x))의 이미지를 단숨에 남긴 곡이다. 제목 ‘NU 예삐오’는 유영진이 지어낸 말로, 혈액형 A·B·O·AB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어떡해요 언니?”라는 강렬한 도입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과감한 표현들로 담아냈다. 다소 난해한 “독창적 별명 짓기 예를 들면 ‘꿍디꿍디’”, “맘에 들어 손 번쩍 들기 정말 난 NU 예삐오” 구간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킬링파트다. 유영진의 난해한 가사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노래.

△ “환돈의 시대 끝에 살아가야 할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슈퍼주니어 ‘돈 돈! (Don't Don)’)

‘돈 돈’은 유영진이 미래 세대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과격한 표현으로 담은 SMP 곡이다. “나의 불꽃을 다 태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어”, “저들의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서라면”, “환돈의 시대 끝에 살아가야 할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환돈 역시 유영진이 새로이 창조한 의미 미상의 표현이다. 제목 ‘돈 돈’은 ‘돈(Money)’과 ‘돈다(Insane: 제정신이 아닌, 미친, 광기의 뜻을 지닌 미국식 은어)’에서 따왔다. ‘돈 돈’은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한 초창기 SMP 분위기를 담은 마지막 곡이기도 하다. 이후 SMP로 나온 엑소의 ‘마마’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았고, 이후 독자적인 세계관을 노래하는 SMCU로 확장된다.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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