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증시가 부진을 면치 못한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에 대거 베팅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리 상승과 전쟁 위협 등 불안 요인이 겹쳐 미국장도 하락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저가매수 기회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많았던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통 큰 투자에 나서기에 이른 시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나스닥100 지수 등락폭을 3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 프로 QQQ (PROSHARES ULTRAPRO QQQ) ETF다. 순매수 대금은 7429억원을 기록했다. 이밖에 테슬라(5145억원)와 엔디비아(2870억원), 마이크로소프트(2863억원), 애플(1175억원) 등 나스닥 종목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지난달 국내 설 연휴 직전까지 나스닥 하락폭은 15%에 달했다. 이 시기 하락 심화 구간을 저가매수 기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바닥을 치고 다시 오를 것을 기대한 매수세다.
나스닥에 통 큰 베팅을 한 투자자들 중 일부는 설 연휴기간 동안 소폭 성과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은 이 기간 빅테크 기업들의 호실적을 타고 5% 가량 올랐다. 애플과 테슬라 등 대형주들이 줄줄이 호실적을 낸 점이 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테슬라는 지난달 26일 4분기 매출액이 21조를 넘겼다고 발표했다. 애플도 지난달 27일 150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두 회사 모두 4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추세적인 상승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전히 기술주에 불리한 환경이 유지되고 있어 고위험 투자로 상승에 베팅할 시기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휴기간의 나스닥 상승은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상승은 아직 멀었다”며 “증시 주변 환경은 여전히 기술주에 우호적이지 않다. 재차 하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내달까지는 조정이 길게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고, 신중한 투자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저금리 효과를 톡톡히 누려온 나스닥에 가장 큰 불확실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대응이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연준의 대응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지속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속적인 금리 인상이나 50bp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높아지자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등 주요 연은 총재들이 잇따라 고강도 인상에 회의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내달 금리 인상폭이 25bp 수준일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물가상승 속도가 여전히 빠르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미 연준 인사들도 강한 경계감을 표시하는 물가 상승 속도도 주시해야 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 폭(전월비 기준)이 지난해 12월 수준과 유사하거나 상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유가 등 에너지 가격 상승과 더불어 공급망 차질을 대변하는 중고차 가격 상승세 지속 등은 물가 압력이 크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유가 및 곡물가격 불안의 장기화 가능성은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