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여자)아이들이 지난 14일 낸 신곡 ‘톰보이’(TOMBOY)는 과감하고 도전적이다. 이 곡 가사를 쓴 소연은 “금발 바비 인형을 원하니? 그런 건 여기 없어. 난 인형이 아냐”라고 영어로 랩을 한다. 육중한 전자 기타 소리와 ‘남자도 여자도 아냐. 난 그냥 나일뿐’이라는 가사가 어우러지는 후렴구에선 노래의 호전적인 분위기가 정점을 찍는다. 소연이 “(여자)아이들 특유의 당당함을 표현한 노래”라고 소개한 ‘톰보이’는 얼터너티브 록을 참고해 만든 사운드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K팝이 록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은 지난 1월 발표한 노래 ‘캔트 컨트롤 마이 셀프’(Can’t Control Myself)에서 미국 펑크 가수 에이브릴 라빈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비슷한 시기 나온 그룹 아이즈원 출신 가수 최예나의 솔로곡 ‘스마일리’(SMILEY)는 팝 록 사운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보이그룹 가운데선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록의 하위 장르인 이모코어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격정적인 감정 표현이 특징인 이 장르의 매력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지난해 낸 ‘루저 러버’(LO$ER=LO♡ER)에서 두드러진다.
전자음악과 힙합에 밀려 쇠락해가던 록은 어쩌다 젊은 피를 수혈 받게 됐을까. 실마리는 팝 시장에 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모코어를 내세운 영블러드, 팝 펑크를 부흥시킨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인기를 얻으며 세계적으로 록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면서 “해외 팝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온 K팝이 이런 흐름을 빠르게 흡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데뷔한 영국 가수 영블러드는 신랄하고 반항적인 메시지로 Z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디즈니 아역배우로 일을 시작한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지난해 낸 ‘굿 포 유’(Good For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5주 연속 정상에 오르며 단숨에 슈퍼스타가 됐다.
다시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돌아온 록은 이전 세대와 다른 양상으로 진화 중이다. 미국 월간지 ‘스터디 브레이크’는 “요즘 유행하는 팝 펑크는 Z세대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집권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을 겪은 Z세대의 자의식과 비관주의가 팝 펑크 등 록에 반응한다는 분석이다. 과거 펑크 음악을 이끌던 밴드 대부분이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올리비아 로드리고나 영블러드, 밋 미 앳 더 알타 등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뮤지션들의 활약도 늘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려는 Z세대의 특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세계 변방에서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여러 소수자 집단을 팬덤으로 결집시킨 K팝은 이런 ‘Z세대 팝 펑크’와 금세 시너지를 냈다. 여러 장르를 뒤섞은 K팝의 혼종성은 “음악 장르를 구분 짓는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는”(스터디 브레이크) 글로벌 음악 시장 트렌드와 엉켜 록을 빠르게 흡수하도록 했다. 편견에 맞서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톰보이’, 청춘의 혼란과 성장을 표현한 ‘루저 러버’ 등 K팝에 자주 소환되는 메시지 역시 저항적인 록의 정신과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
정 평론가는 “자신을 기성세대와 구분하며 새로운 가치를 강조하는 아티스트들이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왔다. 지난 10여년 간 힙합이 이런 역할을 해오다가 최근 들어 록 음악 요소가 다시 앞으로 나오는 추세”라면서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모코어나 팝 펑크와 수십 년 전 사랑받던 정통 록은 사운드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록 특유의 저항적인 스타일과 태도는 해외는 물론 K팝 시장으로도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