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라스베이거스를 ‘사막 위에 지어진 기적 같은 도시’라고 하죠. 그 이유를 오늘 알겠네요.” 5만 관객 앞에 선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팬들을 만난 일이 자신에겐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팀 동료인 제이홉은 “방탄소년단과 아미(방탄소년단 팬덤)가 만나니 사막이 바다가 됐다”며 감탄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이들 말대로 기적이자 바다였다. 각기 다른 수만 명이 하나의 물결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랬다. 미국은 물론, 아시아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팬들은 지리 장벽과 문화 차이를 넘어 ‘자유롭게 춤추자’는 메시지로 하나가 됐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히트곡 ‘버터’(Butter),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다이너마이트’(DYNAMITE) 등 30여곡 무대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완성했다.
전날 막을 올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는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10월 온라인으로 먼저 선보였던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의 연장이다. 멤버들은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과 한국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공연을 열었다. 방탄소년단은 앞서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 방문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기억은 있지만, 단독 공연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라스베이거스가 놀이동산 같은 설렘을 주는 도시여서인지 관객들 텐션(흥분)이 높다”던 RM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 관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흥의 민족’ 한국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적이었다. 한국 관객들이 ‘칼박수’로 공기를 달궜다면 라스베이거스 관객들은 날 것의 열기를 토해냈다. 흥을 주체 못한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뜀박질하며 공연을 봤다. 이들은 정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멤버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간 동안에도 “꺄아아아악!” “제이홉!!” “김!석!진!!” 등 함성 소리가 공연장을 채웠다. 바닥은 노래에 따라 달라지는 함성에 맞춰 둥둥 울렸다.
멤버들은 불같은 라스베이거스 관객들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은 앞서 로스앤젤레스 공연과 서울 공연에선 부르지 않았던 노래 ‘앙팡맨’(Anpanman)과 ‘고민보다 고(GO)’를 선곡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정국은 “내일이 없는 듯 놀아보자”며 호응을 유도했다. 뷔는 “여러분이 얼마나 크게 소리 지를 수 있는지 들려 달라”며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 보자”고 외쳤다. 지난달 왼손 검지를 다쳐 수술 받은 진은 군무가 강조된 일부 무대에선 의자에 앉아 노래했지만, 공연이 후반부로 흐를수록 흥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힘차게 몸을 움직였다.
라스베이거스는 방탄소년단에게 말 그대로 기적의 도시다. 이들은 5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 참석해 미국에 자신들 이름을 알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중소돌’로 설움 겪던 일곱 소년들이 세계를 무대로 각종 ‘최초’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역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방탄소년단의 꿈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순간이기도 했다.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슈가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이 스타디움 투어를 하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대상을 받고 그래미 어워즈 후보로 오를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이젠 바람 가는 대로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RM은 “15세 때 가족 여행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왔다. 당시 음악을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려고 했다. 무대에서 이 멋진 팬들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 때의 남준(RM 본명)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다음 라스베이거스 여행은 정말 어메이징할(놀라울) 거라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미래는 이제 현실이 됐다. 방탄소년단이 ‘기적’이라 말한 라스베이거스 공연은 오는 15일과 16일까지 이어진다. 모든 공연은 얼리전트 스타디움 근처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된다. 마지막 공연은 온라인으로도 스트리밍된다. 방탄소년단 사진전, 기념품 팝업스토어 등을 포함한 방탄소년단 관련 이벤트는 오는 17일까지 라스베이거스 일대에서 이어진다.
라스베이거스(미국)=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