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의 초고가 항암제 ‘킴리아’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면서 환자 접근성이 대폭 향상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CAR-T 치료제 연구개발 의욕이 고취될 전망이다.
킴리아는 노바티스가 개발해 2017년 8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다. 재발 및 불응성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에서 1회 투여로 완치에 가까운 치료 효과를 발휘해 ‘기적의 항암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T세포는 조혈모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인체 면역 담당 세포로, 직접 다른 세포를 죽이거나 사이토카인을 분비해 다른 세포의 활성화를 조절한다.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채취해 암세포의 특정 항원을 인식하는 유전자를 도입하면, 암세포만 특이적으로 인지하고 공격하는 CAR-T세포가 된다. 이를 다시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투약이 진행된다. 환자 1명만을 위한 개인 맞춤형 공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킴리아를 승인했다. 이에 킴리아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을 적용해 허가한 첫 첨단바이오의약품이 됐으며, 적응증은 재발성·불응성 △성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 △소아 및 젊은 성인(25세 이하) B세포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 등 이다.
승인 이후에도 국내 치료 현장에서는 킴리아를 선뜻 활용할 수 없었다. 환자 개인이 전액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비급여 가격은 4억6000만원, 미국에서는 약 45만달러(한화 5억4000만원)로 책정됐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킴리아의 의료보험 적용을 결정한 일본에서는 3349만엔(3억5000만원)의 가격이 책정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혈액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치료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건강보험 급여를 요청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미 안전성이 검증되고 그 효능이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가격이 일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에서 형성되는 문제점은 국가 차원에서의 해결이 필요하다”며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해서는 식약처의 허가 후 신약이 시판되는 즉시 환자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임시적인 약값으로 우선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관련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킴리아 승인 1년만인 지난달 3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킴리아의 건강보험 등재를 의결했다. 건강보험 상한금액은 3억6000만원으로 결정됐고, 산정특례에 따라 약값의 5%를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 여기에 본인부담금상한제가 적용돼 환자가 내는 최대 비용은 598만원을 넘지 않는다. 즉, 비급여 약값 4억6000만원 가운데 4억5000만원갸량은 공적 영역에서 보장해주는 셈이다.
앞으로 적지 않은 환자들이 킴리아를 활용한 치료를 선택할 전망이다. 재발 및 불응성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희귀병으로 꼽힐 만큼 환자수가 많지 않지만, 1회 투여만으로 완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대부분의 환자들이 고려하는 치료 옵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킴리아 치료를 받지 않으면 3~6개월 이내 대부분 사망할 위기였던 약 200여명의 환자들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라며 “건강보험 등재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환자들이 4월1일부터 킴리아 치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생명 연장뿐 아니라 완치에 대한 희망까지 갖게 됐다”고 밝혔다.
환자들의 기대가 큰 만큼, 국내 기업들도 킴리아와 같은 CAR-T 치료제 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의약품 당국의 승인을 받은 CAR-T치료제는 킴리아를 비롯해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예스카타’, ‘테카투스’, BMS의 ‘브레얀지’ 등으로 손에 꼽는다. 킴리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FDA에서 승인됐으며,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CAR-T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시험을 시작한 곳은 큐로셀이다. 큐로셀은 지난해 2월 식약처로부터 불응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CRC01’에 대한 1/2상을 승인받았다. 이어 앱클론이 지난해 12월 ‘AT101’에 대해 1/2상을 승인받았다. 앱클론은 재발성 또는 불응성 B세포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중이며, 이달 8일에는 국립암센터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해 난치성 고형암으로 치료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에 나섰다.
제약사 이외에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CAR-T 치료제 개발을 추진한 사례도 나왔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2월 국내 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식약처에서 CAR-T 치료제에 대한 ‘고위험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를 승인받았다. 서울대병원은 이달 5일 병원에서 자체 제작한 CAR-T 치료제를 18세의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최고위험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에 투약해 치료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