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보험업계, 특히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제판분리(제품-판매 분리)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를 둘로 나눠 보험상품의 개발과 영업을 따로 맡아 비용효과성을 높여 얼어붙은 시장에서의 활로를 찾겠다는 취지다. 의도대로만 실현된다면 고객은 더 좋은 상품을 가입할 수 있고 설계사는 수익을 늘리며 보험사들에게 더 좋은 상품을 만들라고 압박할 수 있다. 회사들은 인건비 등 지출을 줄이면서도 더 잘 팔릴 상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견제와 발전의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며 고객도 설계사도 보험사도 행복한 미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희망과 현실에는 괴리가 존재했던 듯하다. 제판분리에 나선 보험사들도 자회사를 만들고 전속설계사들을 모두 옮기는 완전분리에는 아직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년 전 완전분리라는 과감함을 보인 미래에셋생명과 그 뒤를 따른 한화생명도 아직까진 실질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수익상승곡선을 내놓지는 못했다.
미래에셋생명의 올 1분기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변액보험의 수익을 나눠서 적용하는 ‘분할인식’ 방식으로의 회계기준 변경 전 기준을 적용하면 당기순이익은 196억원, 매출액은 8223억원, 영업이익은 28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1분기 당기순이익 51억원 보다 286% 증가한 수준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지표들은 우려감을 자아낸다. 수입보험료는 절반으로 줄었고 신계약 연납화보험료(APE)는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한화생명은 더 우려스럽다.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509억원으로 전년 동기 1942억원 대비 73.8% 급감했다. 매출액도 1년 새 4조4005억원에서 4조602억원으로 7.7% 감소했고, 영업이익 또한 지난해 1분기 2013억원 흑자에서 올해 58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판매조직을 분사시키는 제판분리 과정에서 이뤄진 대규모 지출의 여파가 코로나19 장기화에 이은 물가상승,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요인과 결합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한화생명 관계자는 “본사 소속일 때와 달리 회사가 분리되며 임대료 같은 고정비 부담 등이 비용으로 잡히다보니 적자가 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적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나 꾸준히 연착륙하고 있는 것으로 (내부적으로는) 판단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휴처를 늘리고 다양한 상품 판매를 통한 수익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일시적 현상이란 점을 강조했다.
미래에셋생명 또한 “회사의 주력상품 중 하나가 변액보험이다 보니 상품이 주식이나 펀드처럼 주가와 연동이 많이 돼 증시가 활황이었던 작년 한 해 동안은 판매가 굉장히 잘 됐지만 올해 들어 증시가 꺾이며 판매가 지지부진한 상황이긴 하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제판분리를 한 이후 체제정비와 여러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는 과정 중임을 감안할 때 실적 부분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순차적 조금씩 올라가는 단계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제판분리에 따른 일시적인 비용증가와 환경적 어려움이 겹친 영향은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제판분리는 보험사들 특히 생명보험사들에게는 필요한 변화이며 ‘대세’라는데 두 회사 모두 뜻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이처럼 “지켜봐달라”는 유보적 입장을 내놓는 것이 실패를 두려워한 변명으로만은 들리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완전 제판분리를 시도하는 회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 법인보험대리점(GA)을 통한 영업 분리는 세계적 흐름이란 점도 이유 중 하나다.
국내 상위권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의 A본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점점 영업을 GA에서 전담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미국은 정확하진 않지만 이미 영업의 70% 이상이 GA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고객과 설계사, 보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설계사들이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해 더 좋은 상품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한편, 보험사들에게 좀 더 좋은 상품을 개발해달라는 현장의 요구를 전달하고, 회사들이 이를 받아들여 상품 개선에 힘쓰는 선순환을 통한 수익증대를 꾀할 수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전제가 되는 것은 전문성과 실력”이라며 자회사형 보험대리점이나 급진적인 제판분리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더했다.
A씨는 “자회사형 GA에 속한 설계사들은 아무래도 모회사 상품에 대한 친숙함이나 더 높은 이익 때문에 타사 상품을 등안시 할 가능성도 크다”면서 “고객들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라도) 결국 설계사가 제안하는 보험을 가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설계사들이 보험사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실력과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한다. 회사들 또한 설계사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가운데 제판분리에 대한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제 실현된지 1년 정도 된 만큼 자체 채널을 통한 판매가 좋은지 제판분리가 대세인지를 두고 다수의 보험사들은 아직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며 “결국 수수료나 성과금, 인건비 등과 수익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방식이 비용절감에 효과가 좋은지 좀 더 비교해보려는 의도로 보여 당장 추가로 시도하는 회사들이 나오지는 않을 듯하다”고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