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안심관광지’ 연속 선정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
-숲 체험과 바다체험 동시에
-숲 향기 맡으며 새소리, 파도소리 따라 산책
-수목원에서 하룻밤, 최고의 힐링
“저 임신 중이에요”
“헛꽃(가짜꽃)이 이렇게 뒤집혀 있는 건 곤충들에게 난 이미 수정 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세요, 라고 말하는 거예요.” 천리포수목원 추모정원 주변 활짝 핀 노말리스 수국 앞에서 숲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그의 이야기가 신기한 듯 귀 기울이며 헛꽃과 헛꽃안쪽에 핀 복슬복슬한 진짜 꽃의 모양을 유심히 살핀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둔 지난 15일, 꽃과 나무 그리고 바다풍경이 어우러진 서해안의 숨은 명소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나무가 행복해 사람도 행복한 곳’ 천리포수목원
태안반도의 끝자락,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한국을 가장 사랑한 미국인’ 故 민병갈 (閔丙㵧· Carl Ferris Miller, 1921~2002) 설립자가 40여 년 동안 헌신해 일궈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다.
푸른 눈의 설립자는 1962년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민둥산의 박토를 매입하고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전체 면적 18만평인 천리포수목원은 그동안 교육 및 종다양성 확보와 보전을 목적으로 관련분야 전문가, 후원회원 등 제한적으로만 입장을 허용했다. 지난 2009년부터 방침을 바꿔 수목원 내 총 7개의 관리 지역 중 첫 번째 비밀의 정원인 ‘밀러가든’과 일부 지역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천리포수목원은 이 밀러가든을 말한다. 천리포수목원은 호랑가시나무, 목련, 동백나무, 단풍나무, 무궁화 5속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6,882 분류군의 식물을 보존(2022년 5월 기준)하고 있다.
이 중 목련과 호랑가시나무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천리포수목원은 해외 교류 협력에 적극 참여해 수목원에서 1997년 국제목련학회, 1998년 미국 호랑가시학회, 국제수목학회를 개최한 바 있다.
요즘 수목원에는 횃불 모양으로 다양한 색상을 뽐내며 노루오줌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노루오줌’을 비롯해 꽃이 지고 나면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분홍색 털실 같은 꽃차례를 피우는 ‘미국안개나무’, 다양한 종류의 ‘수국’, 여름에 꽃피는 목련 ‘태산목’, 뿌리를 지면 위로 올려 숨을 쉬는 '낙우송'과 같은 다채롭고 독특한 식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외에도 보기 힘든 빅토리아 수련을 비롯해 연꽃들도 봉오리를 터뜨려 여름 꽃을 감상하러온 탐방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밀러가든은 입구정원(Entrance Garden)에서 큰 연못 정원(Big Pond Garden), 남이섬수재원(Nami Island Sujaewon Garden), 민병갈 추모정원(Memorial Garden), 왜성침엽수원(Dwarf Conifer Garden), 겨울정원(Winter Garden), 기후변화지표식물원(Climate Change Indicator Garden) 등 총 27개의 가든으로 꾸며져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바다와 잇닿아있어 사계절 초록빛 곰솔 사이로 탁 트인 서해를 볼 수 있다. 피톤치드 향 가득한 수목원 산책길 따라 흰 포말의 파도와 모래펄이 펼쳐진 바다를 만날 수 있기에 감동은 배가 된다.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수목원을 찾은 김종은(42) 씨는 “아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맞아 방문했다.”면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부모님과 여유롭게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산책하니 더 없이 행복하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세계적으로 수천 개의 식물원·수목원 중 섬과 바다, 산과 계곡을 모두 끼고 있는 곳은 천리포수목원이 유일하다. 천리포수목원은 위도 상 북쪽이지만 제주도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을 온실이 아닌 노지에서 키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비밀정원’이다
지난 2000년에는 세계에서는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천리포수목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근심스러운 요즘 탐방객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어 한국관광공사가 2년 연속 ‘안심관광지’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천리포수목원 김용식 원장(사진)은 “설립 52년째인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설립자의 뜻을 따라 다양한 식물을 수집하고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면서 “수목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단지 식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식물사랑과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을 중시하는 수목원이 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나무에게 주인행세를 하지 않기에 나무가 행복하고, 나무가 행복하기에 더불어 인간이 행복한 곳이 천리포수목원이다.
밀러가든 외 이런 곳도…
천리포수목원은 밀러가든 외에도 시간 내어 돌아볼 곳이 많다.
밀러가든 건너편에 위치한 일명 닭섬으로도 불리는 낭새섬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조수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바다가 갈라지면서 길이 생긴다. 게도 잡고 바지락도 채취하고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낭새섬은 섬 전체가 대부분 곰솔군락으로 이뤄졌으나 후박나무, 조록나무 등 상록수를 심어 지속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 외에도 주요 식물들을 키우고 보호하는 지역이어서 연구 목적 외의 출입은 불가하다.
밀러가든 인근 에코힐링센터는 교육연구용 수목원으로 정원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장소이다.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수목원전문가교육과정 교육부터 일반인을 위한 민병갈의 정원학교까지 다양한 교육과 체험학습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약을 통해 숙박도 가능하다.
에코힐링센터 부지 내 위치한 무궁화원은 크게 무궁화동산과 무궁화품종보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7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우리들은 무궁화다!’ 주제로 “제4회 태안 무궁화 축제”도 열린다.
목련원은 에코힐링센터 북동쪽에 조성된 정원으로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목련 속 식물들이 주로 식재되어 있다. 봄이면 각양각색 아름다운 목련과 그 아래에 수선화 등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다양한 수국이 소담스럽게 꽃을 피운다.
침엽수원은 백리포 해변으로 가는 언덕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추위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소나무류, 전나무류, 가문비나무류, 측백나무류 등이 다수 식재되어 겨울 산책을 즐기기 좋다.
이 외에도 복수초, 노루귀 등 많은 종의 자생 초본이 자라고 있는 큰골과 수목원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종합원이 있다.
수목원 2배 즐기기
천리포수목원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옥과 양옥으로 구성된 ‘가든스테이(Garden Stay)’에서 숙박도 권한다. 일반관람객들의 관람시간이 끝나면 수목원은 온통 가든스테이 숙박객들 차지다.
수많은 관람객이 물러난 밀러정원을 가족과 혹은 연인과 함께 새소리 들으며 산책하다가 일몰시간에 맞춰 바다가 보이는 노을쉼터나 바람의 언덕에 올라서면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습도가 조금이라도 높은 아침이면 해무(海霧)로 원근감이 사라진 몽환적 바다풍경과 물안개 살포시 내린 연못정원 산책은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하다. 가든스테이 이용을 위해서는 사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천리포수목원은 향긋한 나무 향과 풀내음에 속에서 짭쪼름한 바다내음도 함께 맡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의 수목원이다.
태안=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