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박병은 “아직 살아있는 감정을 느꼈죠” [쿠키인터뷰]

‘이브’ 박병은 “아직 살아있는 감정을 느꼈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7-27 18:40:37
배우 박병은. 씨제스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연기한 인물의 마음이 밤새 생각났다. 평소와 다른 감정이었다. 지난 22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병은은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며 “한 작품을 이렇게나 오래 찍은 건 처음이다. 여러 감정이 충돌하고 있다”며 애틋해했다.

박병은에게 ‘이브’는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첫 멜로극이다. 데뷔 24년 만이다. “격정적인 사랑을 연기로 표현한 경험이 없었다”고 돌아보던 그는 “배우로서 감정을 쏟아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브’는 그래서 더더욱 놓치기 싫었다”고 말했다. 작품 외적인 논란에 베드신까지, 여러모로 말이 나올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대본을 읽는 순간, 그는 이미 강윤겸의 마음과 교감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라엘(서예지)과의 관계나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장면 등을 보며 강윤겸에게 연민을 느꼈죠. 연기할 때 가장 좋은 건 캐릭터에 연민을 갖고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을 보듬고 싶고, 이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건 저와 통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강윤겸에게 연민이 드는 순간 감사하더라고요.”

tvN ‘이브’ 스틸컷.

‘이브’는 사생활 논란으로 비난받은 배우 서예지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았다. 따가운 시선도 따라붙었다. 수위 높은 격정 멜로가 TV 드라마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세간의 평가가 부담되지 않았냐는 말에 박병은은 시원하게 답했다. “촬영 중에 그랬다면 부담이었겠죠. 촬영 전부터 이미 상황을 숙지해서 괜찮았어요.” 노출에 대비해 몸을 만들다 어깨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낚시와 다르더라고요. 낚시는 어깨를 살짝만 쓰는데, 갑자기 무거운 중량을 드니까 어깨도 깜짝 놀란 거죠. 어깨 입장에서도 ‘이거 뭐야’ 싶은 거고….” 어깨에 빙의한 듯 실감 나게 말하는 모습에 현장이 금세 웃음으로 가득 찼다. 감정연기가 고되지 않았냐는 질문엔 신이 잔뜩 난 답이 돌아왔다.

“초반엔 의도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했어요. 대본 속 윤겸이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이렇게 감정이 쌓이면 후반부가 더욱더 극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혼자만의 연기 계획을 세웠어요. 워낙 감정 변화폭이 큰 인물이라 연기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연기할 때 몰랐던 감정이나 울분, 즐거움, 슬픔이 터져 나오면 쾌감을 느끼거든요. ‘이브’에선 여러 감정을 건드릴 수 있어 좋았어요. 특히나 사랑을 오롯이 퍼부을 수 있어 행복했죠. 나이가 들면서 그런 감정도 없어진 줄 알았거든요. 윤겸이를 연기하며 아직 내 가슴속에 불같은 사랑이 남았단 걸 확인했어요. 나중엔 라엘이의 눈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극 중 강윤겸은 라엘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는다. “느낌상 죽을 것 같더라”고 웃던 박병은은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의 처절한 선택에 마음이 아렸지만, 모든 걸 떠안고 가는 게 좋았단다. 상대 배우들의 열정에 감화된 순간도 있었다. 서예지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작품에 파고들었고, 유선은 5시간 동안 대본만 보며 작품에 집중했다. 박병은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며 “빠져들지 않을 수 없던 현장”이라고 회상했다.

tvN ‘이브’ 스틸컷.

“다들 단단히 집중하는 게 느껴졌어요. 서예지씨는 대본에 밑줄을 엄청 쳐놨더라고요. 그걸 보니 제 대본이 너무 새것 같아서 저도 괜히 형광펜으로 색칠하기도 했어요. 하하. 서예지씨는 정말 열정이 엄청났어요. 리허설 때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촬영이 끝날 때면 ‘아까 그 감정 고마웠다’고 말하곤 했어요. 유선씨는 신인의 자세로 연기하는 배우예요.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에서도 늘 100%로 임해요. 얼마나 그 캐릭터에 깊게 빠졌는지 느껴졌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저를 돌아보고 반성했어요. 유선이라는 배우를 존경하게 됐죠.”

좋은 배우들과 호흡하며 여러 가지를 경험한 현장이다. 주변 반응도 좋았다. “(조)인성이가 방송이 끝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형 멜로 눈빛 장난 아닌데?’라며 응원해줬어요. 본가에 가면 어머니가 친구분과 통화하며 ‘어, 우리 아들이야. 봤어?’라며 즐거워하시더라고요. 뿌듯했어요.” 탱고를 배운 것도 추억으로 남았다. “‘박병은 웃참(웃음 참기) 성공’이라는 댓글을 봤어요. 하지만 실제로 탱고를 보면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사람들이 왜 탱고에 빠져드는지를 느꼈어요.” 드라마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이내 연기 지론을 펼쳤다. 주·조연을 오가며 바삐 활동 중인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매력적으로 해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를 선호해요. 분량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가끔은 주인공보다 조연이 더 매력 있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잖아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중요치 않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잘 해내고 싶어요. 배우는 자기 혼자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객을 설득하고 그들과 호흡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제가 나온 작품의 반응을 살피고 전달력이 좋았는지를 되짚어 봐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놓친 게 있나 고민하죠. 연기란 무수하게 많은 걸 생각해놓고, 그걸 줄여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인물의 찰나를 표현하는 게 좋은 배우 아닐까요? 저 또한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주 멋있는, 배우.”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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