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은지와 가수 이영지, 오마이걸 미미, 아이브 안유진이 지구로 도망간 달나라 토끼를 잡기 위해 제작진과 맞서며 동분서주한다. 애플tv+ ‘파친코’로 얼굴을 알린 배우 노상현은 덴마크에서 우리의 멋을 알리는 데 한창이다. 영화 ‘신세계’ 등 느와르 장르에서 활약한 배우 박성웅은 살벌한 표정으로 얌전히 꼬치 요리를 손질한다. 팔로알토, 정키, 픽보이, 김승수 등 인기 프로듀서들은 심사위원이 아닌 출연자로서 경합을 벌인다. 변화를 꾀하고 있는 요즘 예능의 몇몇 모습이다. 형식에 차별화를 두거나 신선한 인물을 기용하며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지구오락실’, 예상외 조합이 보여준 가능성
신선한 출연진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예능이 tvN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구오락실)이다. 지난 6월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지구오락실’은 네 명의 용사가 시공간을 넘어 달나라 토끼를 잡는 콘셉트의 버라이어티 예능이다. 과거 ‘신서유기’로 독자적인 예능 세계관을 선보였던 나영석 PD 사단의 신작이다. 기존 ‘나영석 사단’에서 볼 수 없던 이은지, 이영지, 미미, 안유진이 멤버로 나섰다. 이들의 차진 호흡은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출연진이 달라지자 제작진이 기존에 보여준 예능 문법들이 힘을 잃는다. 오히려 패턴을 파악한 출연진이 제작진 허를 찔러 참신한 재미가 솟는다. 최근 시청률 약 3%(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다.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도 2주 연속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다.
제작진은 출연자를 선정할 때부터 새로움을 추구했다. ‘지구오락실’을 연출하는 박현용 PD는 쿠키뉴스에 “신선한 얼굴들을 통해 신선한 자극을 주려 했다”면서 “우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대 이상의 관계성을 보여줘 만족한다”고 말했다. 박 PD는 “위계적인 분위기 없이 수평적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출연진 모습이 ‘지구오락실’의 강점”이라고 짚으며 “버라이어티는 재밌는 게임 외에도 끈끈한 멤버십이 중요하다. 출연진의 캐릭터를 앞으로 더 잘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리슨 업’, 프로듀서를 무대 위로
KBS2 ‘리슨 업’은 대중화된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에 프로듀서를 주역으로 내세우며 차별화를 꾀했다. 국내 톱 프로듀서들이 프로듀싱으로 경합을 벌이는 서바이벌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나 가수의 조력자 등으로만 활용되던 프로듀서를 무대 위로 올렸다. 라이언전, 팔로알토, 정키, 픽보이, 김승수, 파테코, 도코, 듀오 라스(LAS), AB6IX 이대휘, 빅나티(서동현)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열기도 뜨겁다. 첫 회부터 김승수가 라이언전을 공개 저격하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진행을 맡은 다이나믹 듀오 개코가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며 “Mnet ‘쇼미더머니’보다 더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스타 출연자 없이 K팝 팬들에게 ‘매운맛 서바이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리슨 업’ 1회는 TV·OTT 통합 화제성 순위 18위로 진입했다.
‘리슨 업’을 연출한 황민규 PD는 “프로듀서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 덕”이라고 말했다. 황 PD는 “전 세계적으로 K팝 위상이 높아졌지만, K팝을 만드는 음악 프로듀서를 주목하는 콘텐츠가 없었다”면서 “대중적인 경연 프로그램에서 음악 프로듀서라는 직업의 다채로움을 소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고의 프로듀서를 모은 만큼 방송을 통해 나올 음원들이 정말 좋다”면서 “창작자들도 아티스트처럼 두터운 팬층이 생겨 더 많은 관심을 얻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배우들도 이제는 예능 시대
예능 출연이 드물던 배우들의 활약도 도드라진다. 노상현은 최근 방영 중인 MBC ‘도포자락 휘날리며’에 출연해 대중에게 다시금 눈도장을 찍었다. ‘도포자락 휘날리며’를 연출한 황지영 PD는 지난달 7일 제작발표회에서 “노상현은 ‘파칭코’에서 크지 않은 역할로도 젊은 여성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서 “우리가 잘 모르던 신선한 인물인 만큼 예능에서 새로운 매력을 어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ENA와 채널A에서 동시 방영 중인 ‘배우는 캠핑짱’에는 박성웅이 캠핑장 사장으로 나서 출연자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배우는 캠핑짱’ 관계자는 “그동안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없던 박성웅, 신승환, 홍종현의 호흡을 보여주려 했다”면서 “캠핑장을 배경으로 한 만큼 자연 친화적인 모습으로 각자의 매력을 보여주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기존 예능과 다른 점”이라고 자평했다.
이 같은 예능의 변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주류 예능인들이 비슷한 포맷을 가진 여러 예능에 빈번히 출연하던 게 지금까지의 흐름”이라면서 “익숙한 그림만 보던 시청자가 새로운 출연자에게 호기심을 갖고 더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플랫폼이 많아진 만큼 실험적인 캐스팅이나 색다른 포맷이 더욱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프로그램 콘셉트와 출연자가 잘 어우러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