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하루만 마음껏 즐기고 싶다 했는데
- 자책감에 몸과 마음 무너져 내려
- 후배 부모, 유품 찾을때까지 장례 미뤄
- 싸우고 책임 미루는 기성세대에 분노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해방촌이나 홍대로 갔어야 했는데…"
10일 저녁 이태원역 주변에 가득 놓인 조화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 여성이 통곡을 하다가 힘이 부치면 흐느끼기를 한 시간 가까이 반복하고 있다. 여성 곁에 남자친구가 등을 다독이며 위로하지만 흐르는 눈물과 회한의 절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한참이나 지난 후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는 여성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무슨 사연으로 그리 슬퍼하시나요…
“가장 친한 대학원 후배 3명이 이태원 할로윈 축제를 즐기러 왔다가 2명은 죽고 살아남은 한명은 병원에 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두절됐어요.” “스터디 그룹 후배들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제가 논문학기라 시간이 안되서 내년에는 꼭 같이 가자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이태원 살아서 매년 할로윈 때면 큰 사고는 아니더라도 꼭 사고가 났어요, 걱정이되서 후배들에게 해방촌이나 홍대 쪽에서 놀면 좋겠다 했더니, 동생들이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이 재미있을 거라며 말을 듣지 않았어요.”
이태원에 도착해서는 동생들이 할로윈 축제 분장한 모습을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언니는 집에서 논문이라 열심히 써라’하고 문자를 보내서 ‘의리도 없는 나쁜 X들, 얼마나 재밌게 노는지 보겠어’라고 답장을 했어요. 그게 저녁 7시쯤 됐구요, 9시쯤 다시 사진을 한 장 보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니네들 거기서 나오는게 좋겠다’ 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이었어요.
그 말이 채 끝나기 전 그녀는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제가 죽일 X 이어요, 동생들을 제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여요. 저도 그때 이태원 집에서 논문을 정리하다 잠깐 나와 산책 중이었어요. 바로 현장으로 가서 달려가서 동생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이후 참사 방송이 나오기 시작해 두려운 마음으로 동생들에게 아무리 통화를 시도해도 누구도 받지 않았어요. 미칠 것만 같았어요. 다음 날도 연락이 안되서 밤을 꼬박 새우고 그 다음 날 오전이 되어서야 후배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살아있으면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 마구 욕을 퍼부어 댔어요, 한동안 핸드폰에 침묵이 흐르더니 그 후배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저만 살고 친구 둘은 죽었다고 펑펑 울면서 말하더라구요”
그나마 그 후배도 월요일 병원에서 나와 지금까지 연락이 되질 않아요.
저도 너무 견딜수가 없어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에요. 사고 현장은 기절할 것 같아서 차마 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 남자친구와 마음 굳게 먹고 왔는데 몸도 마음도 진정되지가 않아요.
"정말 모두 활달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 착한 후배들이었어요. 교수님들도 엄청 칭찬하는 후배들인데 믿기지가 않아요. 모처럼 오늘 하루 강의실과 도서실을 벗어나 청춘을 마음껏 즐겨보겠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후배들의 부모님은 자식들 유품을 다 찾기 전까지는 장례를 못 치르겠다며 지금도 유품을 찾아다니고 계셔요.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살아갈 부모님들을 생각하니 그것도 제 마음이 무너져요.
이번 사고의 큰 책임이 있는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냐는 질문에는 동생들이 다시 살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책임이 있고 없고는 저는 관심이 없어요. 그냥 어른들끼리 싸우고 책임을 미루고 하는 모습에 화가 날 뿐이라며 그녀는 남자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자리를 떴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