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 1분 만에 흐름을 완전 바꿔 놨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선 기죽지 않고 관중석을 향해 응원을 유도했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지만, 누구보다 형 같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8일 오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나와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대 3으로 석패했다.
패했지만 대표팀의 저력을 보여준 경기였다. 전반전에만 2골을 내줬지만 후반 2골을 몰아치며 추격에 나섰고, 경기 막바지까지 주도권을 잡고 쉴 새 없이 가나 골문을 두드렸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인 선수는 팀의 막내, 이강인이었다.
후반 13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은 단 1분 만에 경기 흐름을 바꿨다. 왼쪽에서 상대의 공을 빼앗은 뒤 조규성의 머리로 오차 없이 배달, 벤투호의 월드컵 첫 득점에 기여했다.
이강인은 이후에도 가나 진영에서 활개 치며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쉴 새 없이 날카로운 크로스와 코너킥, 송곳 같은 패스로 상대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초반 주도권을 잡고도 결정적인 패스나 연계가 없던 전반전과는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졌다. 이강인은 후반 30분엔 페널티 아크 우측에 마련된 프리킥 기회에서 왼발로 직접 강한 슈팅을 때려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골 망을 흔들기 충분했던 예리한 시도였다.
팬들의 마음을 울린 장면도 나왔다. 경기 종료를 앞두고 맞은 코너킥 기회에서 이강인을 관중석을 향해 크게 손짓하며 응원을 유도했다. 이에 현장의 ‘붉은 악마’들은 벌떡 일어나 함성을 보냈다. 국내서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도 다시 한 번 결의를 붙태웠다. 과연,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강인은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에 앞장서며 최고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올 시즌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14경기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지만 벤투 감독에겐 철저히 외면 받았다. 지난해 3월 한일전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이후 한동안 선발되지 못했다. 오랜만에 부름을 받은 올해 9월 A매치 때도 결장했다.
그러나 최종 명단에 극적에 이름을 올린 뒤, 앞선 우루과이전에 교체 투입돼 눈도장을 찍었다. 가나전에선 45분여를 뛰며 기어코 자신을 증명해냈다. 1무 1패로 탈락 위기에 놓인 한국은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이 고집을 꺾고, 이날 경기 선발 명단에 이강인을 내놓을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강인은 경기 후 “개인적인 것보다 팀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팀에 도움이 돼서 승리하도록 많이 노력할 것”이라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 다 똑같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