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에서 가장 강력한 견제 대상은 누굴까. 대형 아이돌 그룹, 아니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아니다. 12월 가요계 눈과 귀가 쏠린 곳은 다름 아닌 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대표팀이 16강전에 진출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면서 K팝 시장은 이른 비수기를 맞았다.
“한국대표팀 성적 좋을수록 음원 시장은 위축”
월드컵과 음원 시장의 상관관계는 과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써클차트(옛 가온차트)에 따르면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한 경우 음원 이용량과 월별 신곡 수가 감소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월별 음원 이용량 추이를 살펴보면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6월 음원 이용량은 5월 대비 23% 줄었다. 월별 신곡 수도 5월 170곡에서 6월 111곡으로 감소했다. 당시 한국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1승 1무1 패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했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6월 음원 이용량과 신곡 발표 수가 전월 대비 각각 1%, 18%씩 줄어들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때는 6월 음원 이용량은 전월보다 4% 줄었지만, 신곡 발표 수는 오히려 15% 늘었다. 당시 한국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1승 2패를 기록해 16강전에 올라가지 못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원은 “가장 큰 변수는 국가대표팀의 경기 성적, 다시 말해 16강 진출 여부”라고 짚었다. 한국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월드컵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 가수와 기획사 등이 신곡 공개에 부담을 느낀다는 의미다. 김 수석연구원은 “주요 미디어에 노출되는 월드컵 관련 보도가 증가하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는 관심이 줄 수밖에 없다”면서 “이 경우 제작사는 음반 출시 일정을 월드컵 전후로 조정해 일시적인 공급 감소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음원 이용량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규모 거리응원, 월드컵 개최국과의 시차도 음원 소비량과 신곡 발표 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리응원과 같은 사회적 활동이 활발할수록 음원 소비는 위축된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국대표팀 경기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생중계되는 경우 월드컵이 음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 경기는 오전 4·5시 등 이른 새벽에 몰렸다. 이른 경기 시간으로 거리응원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음원 소비량에 끼친 영향도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올해는 어떨까…전문가 의견 들어보니
한국대표팀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16강에 진출한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어떨까. 전문가와 가요 관계자 의견을 종합하면 ‘음원 소비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신곡 발표 수는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가요 관계자는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12월은 음악 시상식과 연말 가요제가 몰려 있어 비수기로 통한다”면서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대형 가수들이 연이어 컴백했던 만큼, 이달 발표되는 신곡 수는 전월보다 적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연말 콘서트를 열거나 해외 투어를 떠난 가수들이 많아 이달 나오는 신곡이 평소보다 많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다만 이 같은 공급 감소가 음원 소비량을 크게 좌우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RM, 그룹 레드벨벳, 그룹 카라 등 대형 가수들이 신곡을 낸 데다가,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낸 월드컵 공식 주제가가 한국대표팀의 16강전 진출 이후 음원차트에서 역주행하는 등 K팝 팬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해서다. 개최국과의 시차 때문에 월드컵 경기 생중계로 인한 영향도 제한적이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수석연구원은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전이 자정(한국시간)에 시작했고 16강전은 새벽에 열린다. 생중계 시간대에 따른 영향은 최소화될 것”이라며 “다만 한국대표팀이 선전할 경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음악 시장은 한동안 휴지기를 가질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