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안 떨면 합격” 기준 모를 AI역량검사에 취준생 한숨 [쿠키청년기자단]

“눈동자 안 떨면 합격” 기준 모를 AI역량검사에 취준생 한숨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12-12 06:01:01
검사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취업준비생들은 응시 환경에서 감점되지 않기 위해 인터뷰룸을 대여하기도 한다. 정슬기 쿠키청년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채용 전형에 AI 역량검사를 도입한 기업이 늘었다. 그러나 검사 기준이 불명확해 취업준비생의 불안과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AI 역량검사는 자기소개, 기본 질문, 상황 대처 질문, 전략 게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업준비생 개인이 컴퓨터를 준비해 진행하고 검사 시간은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지원자의 성격이나 장단점 등을 묻는 기본 질문 시간이 지나면 상황 대처 질문이 나온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언행을 보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상품에 대한 당신의 기획에 대해 선배 한 명이 제품이 주는 가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때 당신은 선배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같은 물음이 나오면 맞춰 답해야 한다. 전략 게임에서는 도형 위치 기억하기, 공 탑 쌓기, 색-단어 일치 판단 등의 게임을 수행해야 한다.

지난해 AI 역량검사를 시행한 기업과 공공기관의 수는 600여개 이상이다. 코로나-19 확산, 수시 채용 증가, 채용 방식 변화 등이 검사 도입을 불러왔다. 지원자가 응시 환경을 조성한 후 정해진 기간 내에 원하는 장소에서 검사를 진행하는 편리함도 갖췄다.

AI 역량검사를 개발한 한 국내 기업은 AI 역량검사는 공정성이 높고 직무에 맞는 지원자를 효율적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홍보한다. 인성을 확인하는 인성검사나 지식의 양과 정도를 확인하는 적성 검사와 달리 입사 후 실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이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검사에서 지원자가 보여준 표정, 답변, 말투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직무 적합도를 평가한다.

하지만 AI 역량검사 전형에 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모호한 검사 기준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적성 시험처럼 답을 많이 맞힐수록 유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극에 대한 응시자의 반응을 관찰해 직무 적합도를 분석하는 만큼 명확한 평가 기준을 알기 어렵다.

채점 요소가 불명확해 검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이 많았다. 취업 커뮤니티에 떠도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불신은 더욱 커졌다. 취업준비생 박모(26세)씨는 “합격 기준을 모르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팁 중에는 ‘아무 말이라도 당당하게, 표정만 흔들리지 않으면 합격’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시험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준비하면서도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한 기업에서 제공하는 무료 AI 역량검사 전략게임 시행 화면. JOBDA(잡다) 캡처
금융업 직무를 준비 중인 정모(28세)씨는 과거 AI 역량검사 전형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탈락을 반복하자 그는 무료 검사를 해주는 사이트를 전전했다. 금융업 직무에 적합하다는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대답을 하고, 게임에서 어떤 스코어를 올려야 하는지 연구했다. 정씨는 “금융업 직무와 먼 게임에서는 일부러 답 틀려가며 응시했다. 응시자의 필요한 의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보며 점점 검사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검사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취업준비생들은 표정, 목소리, 환경 등 사소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직무에 적합한 자질을 기르기보다 작은 요소에 몰두해야 하는 환경이 된 것이다. AI 역량검사에 세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는 취업준비생 황모(25세)씨는 “질의응답 단계에서 눈동자가 떨린다든가, 전략 게임을 진행할 때 입술을 깨무는 등의 제스처가 감점 요소로 작용한다기에 더욱 유의했다”고 밝혔다.

사소한 행동만 주의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기업 인사 담당자가 역량검사 녹화 영상을 추후 확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배경, 조명, 의상 등도 응시자에겐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영업·마케팅 직무 취업준비생 이모(30세)씨는 검사에서 세 차례 탈락한 뒤 취업 커뮤니티와 채용 전문가 등에게서 ‘인사담당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배경이 더러우면 지원자에게 편견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컴퓨터를 돌려 각도를 틀어서 응시하거나, 흰색 커튼으로 가스레인지를 가리는 등 좁은 자취방 안에서 깔끔한 배경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이렇다 보니 AI 역량검사에 최적인 응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인터뷰룸을 대여하는 취업 준비생도 있다. 인터뷰룸에는 깔끔한 배경, 컴퓨터, 초고속 인터넷, 마이크, 웹캠, 조명 등이 준비되어 있다. 대여할 때마다 3만원가량이 들지만, 이런 요건들이 합격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 있는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케팅 직무 취업준비생 임모(27세)씨는 집에서 검사에 응시한 후 불합격을 받았다. 답변도 잘했고, 말을 더듬거나 동공이 흔들리는 문제도 없었다. 그는 응시 환경이 문제라고 판단했다. 임씨는 “다른 기업 검사에서는 3만원이 넘는 대여비를 내고 인터뷰룸을 이용했다”면서 “지원한 기업마다 돈을 내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큰 부담이다. 그러나 불합격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를 없애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슬기 쿠키청년기자 sookijjo@naver.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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