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종잡을 수 없어 더 재밌는
쉽게 말해 tvN ‘작은 아씨들’은 자매들의 고군분투기다. 우직한 첫째 오인주(김고은)는 원씨 일가에 용맹하게 맞서고, 둘째 오인경(남지현)은 묵묵히 끈질기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자립하길 원하는 막내 오인혜(박지후)는 과감하다. 원하는 바가 각기 다른 세 자매의 행선지는 공공의 적 원상아(엄지원)로 향한다. 일순 긴장하다가도 허무해지고, 그러다 오싹해지는 변화무쌍한 전개. ‘작은 아씨들’은 종잡을 수 없어서 더 재밌다. 이 드라마는 결코 뻔하지 않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강단 있는 인물이 때때로 허술해지는 걸 보는 맛이 쏠쏠하다. 처음 볼 땐 이야기의 기발함에 매료된다. 다시 보면 인물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캐릭터들의 탄탄한 서사는 ‘작은 아씨들’의 힘이다. 원상아에 대한 박재상(엄기준)의 맹목적인 사랑, 최도일(위하준)과 최희재(김명수)가 오인주에게 스미는 과정 역시 볼거리다. 오인주·오인경·오인혜의 용기와 원상아의 욕망, 최도일·박재상의 사랑과 진화영(추자현)의 애정에 주목하면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티빙,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글리치’, 괴상해서 더 사랑스러운
홍지효(전여빈)는 이성적이다. 상식적이다. 과학적 실체가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일상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외계인을 애써 못 본 체한다. 고요하던 그의 생활은 남자친구 이시국(이동휘)이 사라지며 혼란에 빠진다. 지효는 외계인 추적 유튜버이자 중학교 동창인 허보라(나나), UFO 마이너 갤러리 ‘고닉’ 3인방과 힘을 합쳐 이시국을 찾아 나선다. SF물로 출발한 이야기는 추리물과 버디물, 범죄물을 섞어 보여준 뒤 성장 드라마로 막을 내린다. 뒤죽박죽인 장르를 관통하는 건 헐렁한 코미디. 예상치 못한 순간 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은 일종의 쿠션 같다. 믿음을 흔드는 위협으로부터 주인공과 시청자를 푹신하게 받쳐준다. 우애와 로맨스 사이를 줄타기하는 지효와 보라의 관계가 흥미롭고, 아빠라고 불리는 사내를 두 여자가 무찌르는 과정도 통쾌하다. 지효와 보라는 물론, 서화정(백주희), 값대위(태원석), 조필립(박원석), 김동혁(이민구), 오세희(최수임), 김병조(류경수) 등 조연 모두 괴상해서 더 사랑스럽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나의 해방일지’, 이렇게 이상할 수가
평범한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을 마시고, 지하철 타고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나의 해방일지’를 본 첫인상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대단한 사건도, 재밌는 이야기도 없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대책 없는 드라마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갈수록 이상했다. 삶이 왜 이렇게 됐는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 현실에서 만나면 절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잔뜩 나온다. ‘해방 클럽’이라는 사내 동호회도, “추앙해요”라는 문어체 대사도, 전력을 다해 논두렁을 뛰어넘는 장면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함이 매력으로 바뀌는 순간, ‘나의 해방일지’ 속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드라마가 피우는 건 묘한 희망의 불씨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응원하고, 추앙하려는 드라마의 메시지라는 걸 알았다. 그러자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올해 공개된 작품 중 시청자들에게 ‘인생 드라마’로 호명된 거의 유일한 드라마다. 최고 시청률은 6.8%(닐슨코리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배우 손석구를 스타로 만들고, ‘추앙하다’ 등 수많은 명대사를 유행시킨 이상한 드라마다. 앞으로 다시 만나기 어려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김예슬 이은호 이준범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