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린 정유업계가 역대급 성과급이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이 정유사들로부터 ‘횡재세’(초과 이윤세)를 거둬 에너지 지원금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난방비 폭탄'을 해결하자며 추가경정예산(추경)과 횡재세 도입을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설 연휴 다음 날인 25일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정부에서 전기, 가스요금을 대폭 올리는 바람에 취약계층의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며 "30조 원 추경 중 5조 원 규모의 핀셋 물가 지원금 안에 에너지 문제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어 "정유사와 에너지 기업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국민이 입는 고통을 상쇄해 줬으면 하는 만큼 차제에 다른 나라들이 다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도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지난해 고유가에 정유 4사가 막대한 수익을 올렸음에도 고통 분담이 없는데, 석유사업법 제18조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부과금을 걷어 에너지바우처 기금으로 쓰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방식을 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횡재세를 입법해 이를 강제할 방안까지도 추진하겠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지만 횡재세 도입과 관련된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횡재세란 기업이 별다른 자체적인 노력 없이 외부 요인으로 일정 기준 이상의 큰 이익을 얻었을 경우 수익 중 일부를 소득세로 환수해 사회적 자원으로 재분배하자는 개념이다.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서 석유·가스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게 되자 전 세계적으로 이들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는 에너지 기업들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초과이익을 환수해 고유가로 인한 소비자들의 고통을 분담해야 법안은 이미 많이 발의된 상태다.
이성만·강득구·민병덕·위성곤·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미향 무소속 의원 등 10명은 지난 17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석유·가스 기업에 횡재세를 징수하고, 이 중 일부 세액을 소상공인의 에너지 이용을 안정화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정유사와 은행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해 8월에는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석유정제업자가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5억원 이상 초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초과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심지어 이미 '석유사업법 제18조'에는 횡재세 관련 조항이 있다. 18조에는 '산업부 장관은 국제 석유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업자에게 부과금을 거둘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횡재세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에는 최근 정유업계가 높은 금액의 성과급을 지급한 데서 비롯됐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빅4’ 소속 임직원은 올해 성과급으로 월 기본급의 1000~1500%에 달하는 금액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액화석유가스(LPG) 유통업체인 E1은 2022년 성과급으로 기본급 대비 1500%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시기 최악의 적자를 봤을 때에는 정부의 지원이 전무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업황이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의 횡재세 도입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횡재세 도입 대상 기업은 원유와 가스를 직접 시추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원유를 수입해 정유한 제품을 파는 국내 기업 구조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정부의 인위적 시장 개입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횡재세 도입으로 인해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게 되면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공급을 줄여 기름값이 오르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원유가 급등하며 미리 사둔 재고 원유의 가치가 높아져 지난해 좋은 실적을 거둔 것"이라며 "실적악화를 대비해 수익을 신사업에 재투자하겠다는 것인데 횡재세 주장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