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으로 칭하겠습니다.” 준강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 변호인은 7일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나상훈) 심리로 열린 이 사건 4차 공판에서 증인심문을 시작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재가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며 고소장을 낸 A씨를 “피해자”가 아닌 “고소인”으로 호칭하겠다는 의미다. 정 총재 측은 앞서 법무법인 광장을 비롯한 여러 로펌에서 변호사 14명을 선임했다. 이번 재판에는 이들 중 6명이 참석했다.
이날 법정에는 자신을 A씨 옛 연인이라고 밝힌 B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B씨는 “A씨와 교제하던 당시 정 총재가 A씨에게 여러 차례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을 들었다”면서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건만 해도 4가지”라고 증언했다. B씨는 앞서 참고인 자격으로 검·경 수사를 받던 당시에도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A씨는 자신이 성폭력을 당한 것인지 혹은 하나님이 이 사람(정 총재)을 통해서 자신을 사랑한 것인지 헷갈린다며 혼란스러워했다”면서 “(A씨와 대화하며) A씨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총재 측은 B씨가 제출한 A씨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에 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과정에서 “고소인이 증인에게 호감을 느끼던 시기에 다른 남성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털어놓은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고소인이 피해 사실을 밝히자 ‘눈 감고 쉬라’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낸 것이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고소인이 피해 사실을 밝혔을 때 DNA 채취 검사를 권유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등의 지적을 해 B씨가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B씨는 “(A씨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를) 왜 납득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힘들거나 (성폭행을 당한 것이 맞는지) 헷갈리면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경찰에 신고하면 관련 절차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A씨는 당시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경찰에 신고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정 총재가) 진짜 메시아인지 강간범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가 제대로 신고할 생각을 하겠냐”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이 사건은 일반 성폭력 사건과 다르다. (A씨는) 그루밍(심리적으로 지배)되고 가스라이팅(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당한 상태였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정 총재 변호인이 B씨 말을 끊기도 했다. B씨는 “A씨와 메신저로 대화한 내용을 저장한 파일이 있다”면서 해당 내용을 보고 답변할 것을 요청했으나, 정 총재 측은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답할 필요는 없다. 기억나는 대로만 대답해 달라”며 이를 거부했다.
오는 21일 열리는 5차 공판에선 정 총재 측 증인에 대한 심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정 총재 측은 증인만 22명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피고인 구속 기간 내에 선고까지 하려 한다”며 증인심문을 진술서로 대체하라고 주문했다. 정 총재 측은 “(증인을) 최소한으로 줄이겠다”면서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로 이 사건에 국민적인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고 무죄추정 원칙도 지켜야 한다. 구속 기간 안에 사건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취지는 다시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 총재는 2018년 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수련원 등에서 A씨를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 2018년 7월부터 같은 해 말까지 호주 국적 신도 D씨를 다섯 차례 추행한 혐의 등을 받는다. 정 총재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입장이다. 그는 앞서도 성폭행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출소했다. 재판부는 정 총재 측 증인심문을 마친 뒤 이달 말과 다음 달 초 사이에 피해자 두 명도 불러 심문할 계획이다.
대전=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