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부동산 시장 분위기에도 대형 생명보험사들이 잇따라 리츠(Real Estate Investment Trust)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새 건전성 지표 적용을 앞둔데다, 미래 먹거리 발굴 필요성 때문으로 보인다.
리츠란 부동산투자회사법 제2조 제1호에 따라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및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 운영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부동산 간접투자기구인 주식회사를 말한다. 소액으로 부동산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에프엔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삼성FN리츠)는 4 초 상장을 앞두고 지난 20일 수요예측에 돌입했다. 삼성FN리츠는 삼성그룹 계열사 4개(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SRA자산운용, 삼성증권)가 직접 참여하는 삼성그룹 최초의 공모 상장리츠다.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를 후원자로 두고 있어, 자산 매입 경쟁력 및 안정적 운영 기반을 확보했다는 이점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FN리츠는 국내 핵심업무지구에 위치한 우량 오피스 자산 ‘대치타워’와 ‘에스원빌딩’을 기초자산으로 구축했다. 대치타워는 강남권역(GBD)의 A급 오피스이고, 에스원빌딩은 에스원이 100% 임차하고 있는 시청역 인근 A급 오피스로 안정적 임대 수입이 기대되는 우량 자산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상장 리츠 최초로 1, 4, 7, 10월 결산 기준 분기 배당을 실시한다는 이점이 있다.
삼성FN리츠는 스폰서 보유 우량자산에 대한 우선매수협상권도 보유하고 있다. 김대혁 삼성SRA자산운용 상무는 지난 13일 열린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생명 잠실빌딩, 삼성생명 서초타워, 삼성화재 판교사옥, 삼성화재 서초사옥, 청담스퀘어 등 스폰서가 보유한 우량 핵심 자산 편입을 검토할 것”이라며 “신규 자산을 발굴하고 매입해 대형 다물(多物) 리츠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FN리츠는 이번 상장을 통해 총 1189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공모가는 5000원이며 공모주식수는 2378만주다. 21일까지 이틀간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오는 27~28일 청약을 진행한 뒤 유가증권시장에 다음달 중 상장할 예정이다.
올해 공모 리츠 중 첫 IPO(기업공개) 주자였던 한화리츠는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청약에서 미달이 발생했다. 한화리츠는 한화생명보험을 스폰서로 하는 오피스 리츠다. 공모 후 한화생보가 리츠의 46.2%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한화리츠는 지난 13일에서 14일까지 이틀간 일반청약을 진행했고 최종 경쟁률 0.53대 1에 그쳤다. 일반투자자 대상 물량인 696만주 가운데 353만6540주에 대해서만 청약이 이뤄졌다. 이에 상장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인수회사인 SK증권이 실권주를 떠안게 됐다.
한화리츠는 YBD(여의도권)에 위치한 오피스빌딩인 한화손해보험 여의도사옥과 한화생명보험 노원사옥과 구리사옥 등을 편입했다. 향후 한화금융센터63과 서초, 한화손해보험 신설동사옥과 서소문사옥 등을 단계적으로 편입할 계획이다.
매년 4월과 10월에 2회씩 반기 배당을 실시해 향후 5개년간 연평균 약 6.85%의 배당률과 스폰서 자산 및 역량 활용, 임대차 안정성 등을 내세웠지만 미달을 피하지 못했다.
한화자산운용 측은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는 7.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일반투자자에서는 미달이 됐다”며 “일반투자자 수요예측을 앞두고 주말 사이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가 벌어졌다. 앞으로 SVB 파산 사태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 지 모른다는 단기적인 시장 불안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거래는 아직 얼어붙은 상태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오피스 거래 규모는 13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21년(14조9000억원) 보다 10% 감소했다. 2015년 이후 6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국내외 금리 상승,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유동성 위축 등 불확실성이 커지며 투자가 움츠러 든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사들이 부동산 시장 전망이 좋지 않음에도 리츠 시장에 나서는 이유는 올해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킥스란 보험자산과 부채를 기존 원가평가에서 100% 시가평가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에 맞춰 도입된 신 지급여력제도다. 회사 내부에 쌓아야 하는 준비금이 많아야 하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적극 유동화한 것으로 보인다. 리츠 방식은 보유 부동산을 팔더라도 임차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보업계 특성상,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상황에서 리츠 시장이 선택지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생명·한화생명·신한라이프·NH농협생명·미래에셋생명·동양생명 등 6개 주요 생보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748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07억원(2.2%) 감소했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5개 주요 손보사 분위기와 대비된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기존의 상품 판매 방식으로만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게 생보사들의 공통적인 분위기다. 주력 상품인 종신보험, 변액보험 등 장기보험에 대한 관심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사업, 먹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점점 수익창출 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