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원 들였는데 영어 싫어지면 무슨 소용인가요”

“수백만원 들였는데 영어 싫어지면 무슨 소용인가요”

아동영어교육학 교수 “부모도 함께 공부해야 효과적”

기사승인 2023-04-05 06:05:01
그래픽=이희정·이승렬 디자이너

“영어는 일찍 노출할수록 좋아요.”

영어 교육업체의 홍보 문구에 부모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부모들의 학창 시절과 달리, 놀이로 영어와 친해질 수 있다는 교육업체의 말은 조기교육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낸다. 초·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장을 씹어 먹을 정도로 달달 외운 고통스러운 기억은 ‘내 아이만은 영어와 반드시 친하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결국 수백만원에 달하는 영어 키즈카페 멤버십와 고가 영어 전집, 매달 수십만원씩 내는 영어 놀이센터에 지갑을 연다. 초등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워도 충분하다는 교육자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영어 조기교육은 오랜 논쟁거리다. ‘모국어 발달 능력과 정서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느냐’를 두고 찬반이 나뉜다. 영유아기 지나친 외국어 사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론은 잘 알려져 있다.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유아기에 영어 학습을 시작하면 학령기에 영어 학습 동기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이나 일부 경험자들도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영어를 일찍 시작하면 좋다는 교육업체의 홍보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지난달 31일 쿠키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김혜영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가 언어인 만큼 학습보다 언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잘 된 영어교육은 실보다 득이 크다. 그는 “영유아기에 잘 된 영어교육을 받으면 영어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며 “영어에 관심이 가고 영어로 된 글을 보면 읽고 싶어진다.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지는 등 영어 공부에 좋은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두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되는 효과도 있다. 

다만 김 교수는 “안타깝게도 영유아기에 영어를 너무 잘못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영유아 영어교육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된 이유에 대해 △학벌·성공 중심 사회 △수익 중심의 영어 학원(교육업체) △전문성 없는 영어교육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영어 교육은 부모들이 특히 비용 투자를 많이 하는 분야라, 성과 지향적인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라며 “본전 심리가 있으니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습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단기간의 무리한 속성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문제”라며 “언어는 절대 성과 위주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 한 학원 밀집지역에 영어유치원과 학원 버스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가 영어교육의 성과를 원하는 입장이라면, 교육업체는 양육자에게 성과를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영어 교육이 마케팅으로 포장돼 사교육의 연령이 낮아지고 무리한 학습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아동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간단한 연수만 받고 수업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라며 “어떤 지도법을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엉터리로 영어 교육을 하는 곳도 많다. 이런 경우 효과적인 학습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잘못된 영어 사교육은 부작용을 낳는다. 영어에 시간과 수백만원을 투자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유아동기에 놀지 못하고 과도한 학습을 하면 신체와 정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잘 된 영어 교육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먼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마다 언어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시기가 다르다”며 “시기별로 언어 교육의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같은 나이여도 영어에 관심을 갖고 습득하는 시기가 다르다. 또 책을 통해 언어를 즐기는 아이가 있는 반면,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 등을 통해 언어를 즐기는 아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파악해 영어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란 설명이다. 

김 교수는 또 부모가 함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추천했다. 그는 “아이들은 처음 영어를 배울 때 발음하는 것도 즐거워하고 외국인을 만나면 반가워서 먼저 말하려 한다”며 “일부 부모는 아이의 영어 수준을 자꾸 평가하려 한다. 부모와 책을 읽으며 내용을 들려주길 원하는 아이에게 영어 단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묻는 식이다. 이런 모습에 아이들은 화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는 전혀 영어에 관심도 없는데 아이가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나”라며 “부모가 영어공부를 하면 아이는 관심을 갖는다. 부모 옆에서 함께 하고 싶어 자신도 배우겠다고 할 것”이라며 조언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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