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전 10시30분부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했다. 축조심사(법률안을 한 조항씩 차례대로 낭독하며 심사하는 방식)까지 거쳤지만 개정안은 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 등에 밀려 실손보험 간소화 청구 관련 법안이 논의된 것 자체가 오랫만”이라며 “법안이 법안소위에 상정된 것도 올해 처음이다. 비록 결론은 내지 못했지만 한단계 논의가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 논의 테이블에 오른건 2020년 12월 이후 2년4개월만이다. 법안이 법안소위에 상정된 것은 지난 2021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실손의료보험은 2020년 기준 전 국민의 80%(4138만 명)가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도 불린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보험금 청구시 필요한 증빙서류를 종이서류에서 전자서류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자 등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의료기관이 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로 전자서류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종이서류가 전자서류로 대체될 경우 번거롭게 서류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비자와함께 등 주요 소비자단체들이 지난 2021년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손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47.2%에 달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09년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라고 권고한 뒤부터 매년 관련 법안이 발의돼왔다. 하지만 의료계에 강한 반대에 부딪혀 14년간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무려 6건의 개정안이 발의돼있다.
소비자 단체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24일 성명서를 내 “실손보험은 이제 대다수 국민이 가입한 전 국민적 보험으로 법안 논의 지연과 일부 이해관계자의 일방적인 반대 등으로 실손보험금 청구 불편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올해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이해당사자가 함께 해법을 모색할 방안으로 다자간 협의체를 금융위원회에 제안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금융위원회,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의협과 금융위가 각각 추천한 소비자단체 등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지난달 9일 처음으로 8자 협의체 협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좀처럼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의료계에서는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둘 경우 통제가 심해진다는 점, 개인정보 유출 우려, 행정 업무 과중 등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의료계 반발이 심해지자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 신용정보원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정부기관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데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진료정보를 보험업계에 넘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단체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보험업계가 겉으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취지로 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환자의 진료명세와 개인정보 등 민감정보를 손쉽게 수집해 보험사의 이익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는 입장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소액청구뿐 아니라 건강보험 진료를 포함한 모든 진료정보가 디지털화되어 보험사에 자동전송될 수 있다”며 “자동축적한 개인정보를 보험사들이 가입 거절, 지급 거절, 보험료 인상 등에 활용하지 않을 리가 없고 결국 보험금 지급률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