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은행권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이번에는 진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은행은 이번에도 반대 입장을 냈다. 금융당국은 6월 말까지 논의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24일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9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가계부채 질적 구조개선을 위한 고정금리 대출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금융 당국은 은행권 과점 체제를 허물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취지로 지난 3월부터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TF’를 운영하며 6대 과제를 논의 중이다. 6대 과제는 △은행권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 흡수능력 제고 △비이자 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다.
금융위는 이달 말 은행권 개혁안 핵심 내용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최종안을 내달 발표하기 전에 6개 과제에 대한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그간 논의된 내용 핵심을 추려 이달 말 1차 요약본을 공개하기로 했다.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 안건은 지난 3월29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2차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논의됐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은행에만 허용된 계좌 개설 권한을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등 비은행 사업자에게도 열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비은행 사업자에게도 계좌 개설이 허용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종합지급결제업을 취득한 기업의 경우 예금과 대출은 못 하지만 자체 금융플랫폼을 통해 입·출금, 간편결제·송금 뿐만 아니라 급여 이체, 카드대금·보험료 납입 등 디지털 결제서비스를 일괄 제공할 수 있다. 종합지급결제업 진출은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와 빅테크 업체들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 안정성·유동성 위험이 커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2차 회의에서 한국은행 참석자는 “비은행권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 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 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으로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특히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과 관련해 결제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회의적이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경쟁 제한적 금융규제 완화를 위한 제언’ 보고서를 통해 비금융 기업이 결제망에 직접 참여하거나 금융 플랫폼을 장악하면 시장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은행보다 감독이 느슨한 비은행·비금융 회사에 은행 업무를 허용해 주는 등 업무영역 규제를 완화하면 규제차익을 이용, 금융시장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봤다.
비은행권에서는 소비자 선택권이 넓어지는 등 편익이 증대되고, 예탁금 보호 장치를 마련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동안 금융회사가 은행에 지불하던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면 이는 곧 소비자 혜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 보호 장치로는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에 지급결제 계좌에 유치된 자금이 본래 목적 외로 사용되지 않도록 ‘고유재산과 구분해 100% 이상 증권금융에 예치 또는 신탁 의무’를 지키게 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지급결제망에서 최종 대부자로서 핵심적 역할을 한국은행의 반대를 금융당국이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은행권에서는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과거 번번이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TF회의에 참여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사업 진출 측면에서만 이 사안을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논의 시작점부터 달랐다”며 “국내 은행 과점 체제를 깨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번에는 기대할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해외 세일즈 강화 정책 기조에 따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즈베키스탄, 싱가포르 해외 출장길에 오르는 등 금융회사 해외진출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면서 “특히 윤 대통령 본인이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은행 등 금융기관이 매개된 간접금융이 아닌 주식·채권을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시장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통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