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부산지방법원(판사 이영갑)은 백내장 수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보험사에 환자 부담금과 비급여 진료비 등 총 1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입원 치료 인정 ”환자 손 들어준 법원…보험사 항소
소송을 제기한 환자 A씨는 지난해 백내장 치료를 위해 수정체 초음파 유화술과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 등을 받고 본인 부담금액 1402만6240원을 현대해상화재보험에 청구했지만 지급이 거부됐다.
현대해상은 A씨가 받은 수술이 안경·콘택트렌즈 등을 대체하기 위한 시력교정술에 해당하고 입원 치료가 아니라고 봤다. 백내장 치료가 아니라 외모 개선이라는 미용 목적으로 수술받았고, 통원 치료이므로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험사가 지적한 시력 교정 효과는 “의료기술 발달로 백내장이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생긴 부수적 효과”라고 봤다. 입원 치료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A씨는 입원 관찰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라는 담당 의사 진료 소견을 받아들였다. 현대해상은 1심 결과에 불복, 같은달 바로 항소한 상태다. 현대해상은 2심에서 법률사무소 김앤장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과 다른 해석을 내놨다. 당시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라고 여길 수 없다”면서 입원 치료가 불필요한 백내장 수술에 대해 입원 의료비(5000만원 한도)가 아닌 통원 의료비(25만원 한도)로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손보사들은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는다며 백내장 지급심사를 강화했다.
지급기준 강화에 늘어난 분쟁…소비자들 “판결 환영”
지급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민원, 소송제기도 함께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대형 손보사들의 지난해 분쟁조정 신청건수는 2만 8004건으로, 전년(2만 2338건) 대비 25.36% 증가했다.
특히 백내장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지난 2020년과 2001년 각각 6건과 5건이었으나, 지난해 140건으로 약 30배까지 치솟았다. 분쟁 조정 이후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횟수를 말하는 ‘분쟁 신청 후 소제기’는 2021년 30건에서 지난해 87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비자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소연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통원 치료로만 보험금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입원 치료로 인정해 주는 판결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환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반갑다”며 “추후 소송에도 어느정도 영향 주지 않을까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장휘일 법무법인 비츠로 변호사는 “이번 1심 판결은 주치의 판단이 입원 필요성을 가릴 때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나온 것”이라며 “2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피보험자에게 유리한 판결로 앞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백내장 보험금 담합 의혹까지…금감원은 “보험사 오해 받을라” 정보공개청구 거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손보사들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지난 5월 현대해상·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흥국화재 등 주요 손보사에 조사관을 보냈다. 공정위는 백내장과 관련해 보험금 지급 거부 과정에서 이들 손보사들이 담합했는지 여부와 보험 상품과 관련, 부당 행위가 있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험사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단체의 정보공개청구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소연은 지난달 중순 ‘최근 2년 동안 백내장 보험금을 부지급한 보험사에 대한 정기검사 및 수시 종합검사 실시 여부’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금융감독원은 한 달 넘게 시간을 끌다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정보공개를 거부한 상태다. 실소연은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정보공개 청구했는데 공개 거부 사유가 쉽게 납득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보험사가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보 비공개 사유에 대해 “백내장 부지급과 관련해 어떤 보험사에 정기 혹은 수시 검사를 나갔다는 내용이 공개되면 공개된 보험사에 문제가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