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때문에 밤잠 설치고 아토피가 얼굴 쪽으로 올라오면 사람 만나기가 싫었어요. 대학생이 돼서 아토피가 심해졌는데 그때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토피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병원 가고 정보도 수집했는데 아토피는 완치가 안 되는 병이래요. 평생 관리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20일 기자와 만난 경기 평택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주현(가명·32) 씨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아토피피부염을 달고 살았다. 다행히 중증은 아니다. 현재 이 씨는 동네 피부과 병원에서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며 증상을 관리하고 있다.
“아토피피부염이 한창 심할 때는 직장에 연차를 내고 대학병원에 갔어요. 돈 낭비, 시간 낭비 등 번거로움이 한 둘이 아니었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2년여 전 이 씨는 중증 아토피피부염이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에 포함되고, 효과 좋은 신약들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큰 기대를 품기도 했다. 이 씨는 이 혜택을 받기 위해 산정특례 심사를 준비했지만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포기했다.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증상을 잘 관리하고 있지만 산정특례 준비 당시 ‘이렇게까지 조건이 까다로운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어요.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는데 많은 환자가 신약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와 비싼 가격의 치료제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은 여름철 팔, 다리뿐 아니라 얼굴과 목 등 신체 전반에 병변이 심해지면서 심한 가려움과 거칠고 건조한 피부 때문에 고생한다. 더불어 값비싼 치료제는 이들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어릴 때 치료시기를 놓쳐 성인이 돼서도 아토피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청소년기 때부터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여름철 재발하고 증상 악화되기 쉬워
20일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등에 따르면 아토피피부염은 환경 변화와 각종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피부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발생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유전학적·면역학적 측면과 피부 장벽 기능의 저하, 환경적 영향 등이 아토피피부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토피피부염의 특징적 증상은 가려움증과 발진이다. 거의 모든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이 건조하고 윤기 없는 피부 상태를 보이며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급성 피부병변은 가려움증이 심한 홍반구진과 물집이 나타나고, 병변을 긁으면 삼출병변이 발생해 2차 감염으로 이어진다. 만성기에는 반복적으로 긁어 피부가 두꺼워지는 태선화와 피부가 울룩불룩 올라오는 결절양진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아토피피부염이 재발하거나 증상이 악화되기 십상이다. 요즘 같이 덥고 습한 환경 속에서 상처 난 피부는 세균, 진균 바이러스 감염에 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고주연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아토피피부염은 습도의 변화, 알레르기항원 노출, 과도한 땀 분비, 스트레스, 자극물질 노출 등에 의해 악화될 수 있다”며 “여름에 과도한 습기와 높은 외부 온도로 인해 땀 분비가 증가하면서 가려움증이 심해진다. 피부를 지속적으로 긁게 되면 각종 염증반응이 가속화하며, 이로 인해 가려움증이 다시 유발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은 여름철 한낮에 실외에서 운동하거나 외부 활동을 장시간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아토피피부염 부위가 자외선을 강하게 받으면 피부 색소 침착으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시기 놓쳐 만성화되면 성인기로 이환
고 교수는 “아동·청소년기 때부터 치료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영유아기 또는 소아기 아토피피부염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아 만성화되면 성인기 아토피피부염으로 이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과거에 비해 성인기 아토피피부염의 빈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아토피피부염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질환으로, 체계적이고 다양한 접근을 통해 병변의 급성 악화를 막고 삶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를 위해 약물치료뿐 아니라 환자 교육, 건조한 피부에 대한 수분 공급, 악화 요인의 인식 및 제거, 가려움증과 피부염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써서 증상을 관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20일 중증아토피연합회가 ‘청소년 아토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주제로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개최한 건강토크쇼에서도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 아토피피부염의 특성, 치료 및 관리’를 주제로 발표한 김현정 세종충남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전체 아토피피부염 환자 중 10대 청소년 환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아토피피부염은 삶의 질을 망가뜨리고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특히 청소년기 환자들을 진료 보면 주변의 시선과 참견 때문에 위축돼 있고 주눅 들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아토피피부염 환자 수는 98만3913명에 달한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10세 미만이 32만9758명으로 전체 환자의 33.5%를 차지했고, 10대가 16만4110명(16.7%)으로 뒤를 이었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절반에 달한다.
김 교수는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학령기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건 반팔 교복을 입고, 아무거나 다 먹게 되는 것”이라며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은 가렵고, 못 자고, 친구를 못 사귀는 등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사회적 고립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중등증 환자, 표적치료제 보험급여 혜택 밖
지난 2021년 1월부터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경우 건강보험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의료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제약기업 사노피의 생물학적 제제 ‘듀피젠트’(성분명 두필루맙)의 약가가 연간 약 500만~1200만원에서 약 200만원대로 줄었다. 건강보험 산정특례는 진료비 부담이 큰 중증 질환자와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중등증의 경우 신약으로 구분되는 표적치료제의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중등증 환자들이 고비용으로 고통 받고 있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증과 중등증을 나누는 기준은 1993년 유럽 아토피 태스크포스(TF)가 제안한 아토피피부염 중증도 지수(SCORAD) 또는 습진 중증도 평가 지수(EASI)에 따라 갈린다. SCORAD 지수 15~39점 또는 EASI 지수 16~22점 사이는 중등증, SCORAD 지수 40점 또는 EASI 지수 23점부터는 중증으로 분류한다.
고주연 교수는 “중등증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경우 표적치료제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해 대부분 부작용이 적은 고비용 표적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등증 환자들도 가려움증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현재 중증 아토피피부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다양한 약물이 급여권에 들어서 있다. 사노피의 ‘듀피젠트’를 비롯해 △미국 화이자의 야누스키나아제(JAK)억제제 ‘시빈코’(성분명 아브리시티닙) △미국 애브비의 JAK억제제 ‘린버크’(성분명 유파다시티닙) △미국 일라이릴리의 JAK억제제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 등이 있다.
고 교수는 “정책적으로 사회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 중등증 환자들을 보다 세분화해 이들에 대한 지원 카테고리를 만들어 정부 지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국내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 대한 통계자료가 보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과 유사하게 출생 코호트를 통해 국내 출생아 중 일부를 대표 표본으로 설정해 아토피피부염 발생률과 경과, 치료제 사용 및 정부 지원 여부 등을 지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고 교수는 “아토피피부염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전문의의 아토피 상태 평가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며 “아토피피부염은 환자 개인의 상태에 따른 치료제 선택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따라서 아토피피부염이 의심된다면 전문의와 상의해 중증도 여부 등을 파악하고 적정 치료를 시작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업무를 담당하는 건보공단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고 제도를 개선해나가겠다고 했다.
이경원 건보공단 산정특례운영부장은 중증아토피연합회 주최 건강토크쇼에서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개정에 따른 진료비 부담 경감’을 주제로 산정특례 제도에 대해 설명하며 “환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제도권 안에서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정특례 제도뿐만 아니라 본인부담상한제와 재난적의료비 등의 환자 지원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