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밝힌 ‘밀수’의 몇 가지 이야기 [쿠키인터뷰]

류승완 감독 밝힌 ‘밀수’의 몇 가지 이야기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7-30 06:00:06
영화 ‘밀수’ 현장 스틸컷. NEW 

4년 전 전북 군산.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 촬영 당시 조성민 외유내강 부사장은 군산의 한 지역박물관을 찾았다가 이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19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 당시 류승완 감독은 한 잡지를 통해 1970년대 부산 일대에서 여성 밀수단이 활약한 이야기를 접하던 때였다. 각기 다른 한 줄들이 뭉친 순간 이야기가 품은 힘은 폭발하듯 커졌다. “여성이 바다를 배경으로 활극을 펼치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새로운 시도라는 생각에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지난 26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밀수’는 해녀들이 바닷가에서 벌이는 밀수를 큰 줄기로 하는 해양액션범죄활극이다. 장르영화로 잔뼈가 굵은 류승완 감독에게도 이 같은 로그라인(한 문장으로 요약한 줄거리)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판을 짜는 순간 그의 머릿속엔 김혜수와 염정아가 떠올랐다. 이들을 주역으로 작품을 기획하던 그날의 두근거림을 류 감독은 지금도 기억한다. 감독은 “김혜수, 염정아라는 큰 봉우리에 조인성·박정민·고민시·김종수가 어우러져 산맥을 이뤘다”면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밀수’ 스틸컷. NEW 
‘밀수’ 스틸컷. NEW 

김혜수·염정아부터 박정민·조인성까지… ‘밀수’를 완성한 순간들

전작 ‘모가디슈’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면, ‘밀수’는 가상 도시인 군천을 주 무대로 내세웠다. 류 감독이 가상을 배경으로 설정한 건 2006년 연출한 ‘짝패’ 이후로 처음이다. 완벽한 장르의 세계를 표방해서다. 덕분에 1970년대 사람들이 향유하던 음악과 패션 등을 강조하면서도 고증에서 일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감독은 “이 영화는 모든 게 마음 편하고 재밌었다”면서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정서들도 즐거이 담았다”고 돌아봤다.

배우들의 차진 호흡은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현장에서 경쟁 구도가 한순간도 없었다”는 게 감독 설명이다. 김혜수, 염정아 덕이다. 감독은 김혜수와 염정아가 한 작품에서 만난 적 없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두 사람이 함께한 현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김혜수가 팔팔 끓는 불이라면 염정아는 차갑고 진중한 물”이라고 비유한 감독은 “염정아가 진숙으로서 차가움을 유지한 덕에 모든 배우가 각자 캐릭터대로 날뛸 수 있었다”고 짚었다. 연기 외에도 다양한 몫을 해냈다. 두 배우를 중심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퍼져나가자 현장은 늘 화기애애함으로 가득했다. 감독의 예상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명연기도 여럿이었다. 배우들에게 놀라던 순간을 하나씩 꼽는 류 감독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춘자(김혜수)가 다리를 화려하게 움직이며 맹룡호를 건너가는 장면이 있어요. 김혜수가 춘자의 동작에 살을 붙인 거죠. 아무도 춘자의 그런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했어요. 극 후반부에서 진숙(염정아)이 눈물을 흘리던 장면도 그래요. 촬영 직전까지 쾌활하게 점심 메뉴 물어보던 사람이 앉자마자 눈물을 훅 쏟아내는 게 경이로울 정도였어요. 권상사를 연기한 조인성의 눈빛은 말 그대로 끝내줬어요. ‘그쪽이 나보다 누님’이라는 대사의 톤과 미소 모두 기억에 남아요. 박정민이 연기한 장도리가 칼로 혀를 날름대는 장면은 현장에서도 충격과 공포였어요. 모두가 생생한 연기에 감탄하기 바빴죠. ‘커피 향을 줄이냐’며 천연덕스럽게 말하던 고민시도 마찬가지예요. 김종수 선배가 총을 쏜 뒤 깜짝 놀라는 모습은 무성영화를 보는 듯했어요. 이런 배우들의 연기를 가장 먼저 볼 수 있어서 행복했죠. 우리 배우들이 창조적인 예술가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밀수’ 스틸컷. NEW 
‘밀수’ 스틸컷. NEW 

지상액션 넘어 수중액션으로… “완성도 자부해요”

‘밀수’는 국내 작품 중 처음으로 해녀들의 수중액션을 담아냈다. 배우들의 헌신으로 가능했다. 류 감독은 “수영을 할 줄도 모르던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기까지 겪었을 노고를 안다”며 고마워했다. 수중 촬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은 동작에도 잔물결이 일다 보니 기껏 잡아둔 촬영 각도가 흐트러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생각하다가도 촬영을 마치면 ‘이게 된다고?’라며 감탄하곤 했어요. 현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배우들이 헌신하는 걸 보면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죠. 그때 느낀 감동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지상액션으로 잔뼈 굵은 류 감독이 수중액션을 택한 건 새로움을 향한 갈망 때문이다. “내가 해본 적 없고 남들도 안 해봐서” 도전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물속에서 벌이는 액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물의 저항이 존재하는 만큼, 남성과 여성이 겨룰 때도 완력보다는 물에 익숙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다. 현실과 맞닿으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살리기에 적격이었다. 수중 싱크로나이즈 팀과 논의를 거쳐 수많은 장면이 탄생했다. 그는 “무모한 첫 시도에서 새로움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권상사가 주축을 이루는 지상액션에선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류 감독은 격렬함과 의외성, 서스펜스에 한 스푼의 유머를 더해 액션 시퀀스를 구상했다. 장면을 풍부하게 만든 공은 배우들에게 돌렸다. 감독은 “지상액션은 관객의 정서까지 건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완성도를 자부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밀수’ 스틸컷. NEW 
‘밀수’ 현장 스틸컷. NEW 

“‘모가디슈’·‘베테랑’과는 다른 설렘, ‘밀수’는 이렇게 봐주세요”

‘밀수’는 춘자와 진숙을 중심으로 모든 인물이 각기 할 몫을 해내는 영화다. 무게중심을 잡은 두 배우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춘자와 진숙이 다방에서 독대하는 장면은 숙소에서 두 배우가 감독 앞에서 시연하며 재조립했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던 기존 각본과 달리 의도적으로 여백을 뒀다. 관객이 이들의 진심을 느끼고 공명하길 바라서다. 두 캐릭터 외에도 ‘밀수’ 속 인물들의 관계에는 각기 다른 공백이 존재한다. 감독은 “관객이 각자 취향과 삶의 궤적을 따라 인물 사이 빈 곳을 꿰맞추는 게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류 감독에게 ‘밀수’는 새로운 시도, 신선한 감상을 남긴 작품이다. “늘 현장이 힘들었지만 ‘밀수’만큼은 이 작업이 끝나지 않길 바랐을 정도”다.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를 이끄는 만큼 그에게 현장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쟁터다. 다만 ‘밀수’는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스태프와 베테랑 배우들이 힘이 더해져 그의 걱정을 한시름 놓게 했다. 지난 26일 개봉한 ‘밀수’는 호평을 얻으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류 감독은 “올해 초 개봉 시기를 고민하면서 ‘모가디슈’ 공개 당시보다는 나은 상황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때는 그때의 떨림이, 지금은 지금의 설렘이 있다. ‘베테랑’ 때도 그랬다. 긴장하는 마음으로 ‘밀수’의 여정과 함께하겠다”며 다부진 미소를 지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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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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