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속도로 한반도 내륙을 종단한 제6호 태풍 카눈이 11일 오전 소멸됐다. ‘우려만큼 큰 피해가 없어 다행’이란 언론 보도에 일부 누리꾼들은 “수도권만 안전하면 다행이냐” “이게 수도권 공화국이란 증거”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이재민 1만5883명이 발생했다. 대부분 경북(9804명)과 경남(2967명)에 집중됐다. 10일 대구에서 하천에서 추락하며 실종되거나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지만, 중대본은 이를 태풍 피해가 아닌 안전사고로 분류했다.
지방 거주자들은 “수도권만 큰 피해 없으면 잘 대비한거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대구에 거주 중인 직장인 남모(31)씨는 수도권이 안전하면 “괜찮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걸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그는 “사람이 죽었는데 별 피해가 없었다는 말은 보기 불편하다”며 “지방은 태풍이 올 때마다 매번 겪고 있다. 지방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카눈의 북상과 함께 수도권 공화국 논쟁이 벌어졌다. 한 커뮤니티에 ‘카눈이 수도권을 직접 타격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자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데 제목 참.”, “수도권은 예상보다 약해서 생각 없는 사람들이 ‘오버였다, 별거 아니다’ 이럴 거 같아 벌써부터 화가 난다”, “남쪽이 훨씬 위험하다 지방도 기사 메인에 써달라”는 반응이 나왔다.
수도권 거주자들도 ‘서울 사는 게 죄냐’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이번 태풍으로 서울에서도 재산 및 시설물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 도심에서 한옥 지붕이 무너지거나, 빗길에 버스가 미끄러져 일부 시민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수도권은 뭔 죄인이냐”, “서울 살면 다 아파트 사는 줄 아냐. 서울도 노후된 지역, 주택, 반지하 많아서 피해 크다”, “수도권은 타 지역보다 태풍 피해가 덜하지만, 인구가 많은 데 비해 대비가 잘 안 돼서 피해가 나면 크게 난다. 고깝게 보지마라”며 토로했다.
지난해 9월 포항과 경주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풍 매미처럼 역대급 태풍이란 예보가 있었지만, 서울에선 피해가 예상보다 적었다. 당시 SNS에선 “태풍 온다고 재택근무 한 게 무색할 정도다”, “기상청 예보가 또 빗나갔다”등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포항 등 경북 지역은 침수와 범람 등 큰 피해를 입었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며 ‘서울공화국’이란 반응도 나왔다.
‘서울공화국’ 논쟁을 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 결과란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 A씨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이 격차가 해소되지 않다 보니 결국 국민들 사이에서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