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도 두통이 심하면 데굴데굴 구르는데 어릴 때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요. 얼마나 아팠으면 그 당시 일기장에 ‘제발 머리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적었을까요.”
최근 대한두통학회가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개최한 ‘편두통, 군발두통, 만성두통 환자를 위한 한국두통환자 지지모임’에서 만난 김준석(26·가명) 씨의 얘기다.
김 씨의 이유 모를 두통이 시작된 건 6살 때부터다. 처음엔 머리 아픈 게 병인 줄 몰랐다. 부모님이 주는 타이레놀만 먹으면 낫는 줄 알았다. 토하는 게 일상이었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플 때면 구급차에 실려가 입원도 했다. 17살이 돼서야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만성편두통을 진단받았다.
병의 고통과 함께 김 씨를 슬프게 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걷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서 구급차를 불렀는데, 구급대원으로부터 ‘택시 불렀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땐 황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겨져 씁쓸했다. 무엇보다 가족마저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두통이 심해질 땐 소음과 빛에 민감해져 집에서도 불을 끄고 TV 소리도 줄이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 다툼도 많았어요. ‘온전히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아청소년기 두통은 흔한 병이다. 하지만 김 씨처럼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두통을 호소하면 꾀병으로 여기지 말고 전문적인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아청소년 두통, 적극적 검사 필요”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의 편두통 유병률은 5~20%다. 이 가운데 10~20%는 치료가 잘 안 돼 만성두통으로 이어진다. 두통은 크게 특별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차성 두통’과 뇌막염, 뇌종양 등 뇌혈관질환 등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이차성 두통’으로 나뉜다. 긴장성 두통, 편두통, 군발성 두통 등이 일차성 두통에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이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이차성 두통을 의심하고 진단받을 것을 권고한다. 나지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신경분과 교수는 “소아청소년 두통의 경우 증상이 애매하거나 꺼림칙하다면 뇌영상 검사 등 적극적인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며 “부모가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단순 꾀병으로 치부하면 아이의 학교 성적, 생활, 교우관계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만성편두통을 겪는 아이들의 고통은 뇌전증 등 널리 알려진 신경과질환과 비교해 결코 덜하지 않다”며 “소아청소년 편두통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며,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편두통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 편두통 치료법은 다양하다며 진단과 함께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나 교수는 “의료진은 두통의 원인을 찾기 위한 신경학적 검사를 아끼지 말고 시행하고 보호자에게 편두통이 만성질환임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소아청소년 두통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히 치료함으로써 환아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대한두통학회 차기회장인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도 “경제활동 참여 연령대에서 가장 큰 해악이 되는 질환이 바로 두통”이라며 “두통은 죽는 병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괴롭고 아픈 병이다. 그러나 두통 환자들은 정책적 우선 순위에서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한다. 두통 환자 편에 서서 이들의 어려움을 반영한 정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