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따라잡기 보다는 보다 잘하는 걸 택했다. SKT가 통신사 특화 버티컬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초거대 테크기업과 경쟁보다는 협업하며 자체 경쟁력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SKT는 26일 서울 T타워 수펙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중심 자체 경쟁력 강화와 협력을 강조하며 AI 피라미드 전략을 내놨다. AI 인프라와 AIX, AI 서비스 등 3대 영역을 중심으로 산업과 생활 전 영역에서 혁신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유영상 SKT 사장은 “AI 골드러시가 바야흐로 시작됐다”며 “AI 혁명은 SKT에게 기회다. 위기를 느껴 좌고우면하는 회사에 비해 저희는 기회만 있기에 가장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각화 전략이 아닌 ‘업’의 재정의를 통해 새로운 회사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통신사이지만 AI 컴퍼니로서의 모습을 만들어 낼 새로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을 살펴보면 ‘AI 인프라’가 피라미드 가장 하단에서 전체 모델을 받치는 구조다. AI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멀티 초거대언어모델(LLM) 등이 해당한다. 이를 통해 AI 기술 혁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유 사장은 AI 인프라를 골드러시 시대 금을 캐기 위해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청바지와 곡괭이에 비유했다.
차세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SKT는 SK브로드밴드(SKB)와 함께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과 기술, 글로벌 CSP와의 관계 등을 강점으로 국내외 확장을 꾀한다. 에너지 절감을 돕는 액침 냉각 시스템과 수소 연료 전지 등의 에너지 솔루션도 도입한다. 국내 데이터센터 규모는 오는 2030년까지 현재의 약 2배 수준으로 확대한다.
SKT가 설립한 AI반도체 전문기업 사피온은 차세대 추론용 AI칩 X330을 올해 말 출시한다. 이는 경쟁사의 추론용 모델 대비 연산 성능 약 2배, 전력 효율도 1.3배 우수하다고 전해졌다.
간담회에서는 SKT LLM 이름이 ‘에이닷엑스(A.X) LLM’으로 정해졌다고 발표됐다. SKT의 AI 기술 브랜드도 A.X로 확정됐다. A.X는 한국어에 특화된 모델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설명됐다. 이날 시연된 A.X는 드라마 더글로리의 대사를 자연스럽게 전라도 사투리로 변화시켰다. 한국어 대화를 깊게 이해해 드라마 꽃보다남자의 한 장면을 MBTI ‘F’가 아닌 ‘T’일 경우를 가정해 새롭게 대사를 쓰기도 했다. 표와 그래프, 코드 등을 이해하도록 해 사람 중심의 AI로 만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이에 더해 정석근 글로벌 AI 테크 사업부장은 “AI는 범용보다 특정 영역에 특화된 형태로 진화 중”이라며 “통신사가 가진 데이터, 기술 등을 특화해 통신사 특화 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체 LLM 고도화와 함께 앤트로픽, 오픈AI, 코난테크놀로지 등 국내외 AI 기업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날 영상으로 등장한 앤트로픽 COO도 “SKT의 통신 데이터와 앤트로픽의 AI 지식을 결합하면 혁신적인 통신사 특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는 비전을 공유했다”며 “업계를 변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AI 피라미드 중간 영역에는 AIX가 자리한다. 모바일과 브로드밴드, 엔터프라이즈 등 중심 산업 전반에 AI를 접목해 생산성과 고객경험 혁신에 나선다. 마케팅과 고객센터 등에 AI를 접목, 네트워크 인프라를 AI 기반으로 운영 효율을 높인다면 현재보다 약 20~30%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SKB의 Btv를 AI tv로 진화시켜 새로운 고객경험도 제공한다. TV가 개인을 식별해 개인화된 TV를 보여주는 AI 큐레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AI를 접목한 엔터프라이즈 매출을 지난해 1500억원에서 오는 2028년 1조원 수준으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모빌리티와 AI 헬스케어, 미디어, 애드테크 등 SKT의 AI 역량을 인접영역까지 확장해 가치를 높인다. 특히 도심항공교통(UAM) 사업은 오는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 사장은 “하늘 위의 ‘테슬라’를 지향하고 있다”며 “이동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의 관광이나 공공·물류 서비스 등에서 쓰임새가 다양하다”고 이야기했다.
피라미드 최상단에는 AI 서비스가 위치한다. 지난해 선보인 한국어 LLM 서비스 에이닷(A.)은 이날 정식 출시됐다.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혁신하고 일상과 AI 서비스 연결을 확대, ‘나만의 AI 개인비서’로 진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로워진 A.의 큰 축은 통신사의 장점을 살린 AI 전화다. 이전 통화 내역을 바탕으로 전화할 사람을 추천하고 통화 중 주고받은 내용을 AI로 분석해 중요한 정보 중심 통화 요약도 제공한다. 통화 중 약속한 일정을 캘린더에 등록하거나 주소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통화 중 실시간 통역 등도 순차적으로 제공한다.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일본어 등 4개 언어에서 동시통역이 제공되며 향후 베트남어와 스페인어 등 11개 언어로 늘려갈 계획이다.
A.은 기상과 출근, 취침 등 생활 전반의 일상에 AI를 결합할 예정이다. 수면관리와 뮤직서비스 등이다. 고객은 새롭게 출시될 A.Sleep 서비스를 통해 별도 수면 진단기 없이 AI 수면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호흡 데이터 기반으로 수면의 패턴과 질을 분석, 상태에 따라 최상의 기상 시간을 알림 받게 돕는다. AI 뮤직은 A.과의 대화만으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편집이 가능하도록 진화할 예정이다.
글로벌 확장 계획도 설명됐다. SKT는 지난 7월 도이치텔레콤, e&, 싱텔 등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통신사 특화 LLM 인텔리전스 플랫폼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국가별 통신사와 협력을 통해 현지화·고도화를 거쳐 동시다발적으로 개인화된 AI 비서시스템을 런칭, 빠르게 시장을 선점한다는 방침이다.
관련 투자도 확대된다. SKT는 AI 관련 투자 비중을 과거 5년(2019~2023) 12%에서 향후 5년간(2024~2028) 33%로 약 3배 확대한다. 과거 5년 기준, 인프라 2% 서비스 9%, AIX 1% 규모에서 인프라 11%, 서비스 15%, AIX 7%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오는 2028년 매출 25조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