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 눈엔 “가족은 선명, 진실은 흐릿” [10·29 그리고 1년]

이태원 참사 유가족 눈엔 “가족은 선명, 진실은 흐릿” [10·29 그리고 1년]

기사승인 2023-10-28 20:58:01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 주최 추모제 159배 제사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유민지 기자

“유가족이라는 말이 정말 싫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유가족이 됐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유가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8일 오후 4시 서울광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발길은 광장 한편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 멈췄다. 159개 보랏빛 별 조명 아래, 보라색 옷을 입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유가족 주최 추모제가 열렸다. 광장에 모인 유족과 시민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진정한 사과를 촉구했다.

추모제 시작 30분 전, 유족들과 시민대책회의 그리고 종교계가 주최한 159배 제사가 시작됐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 ○○○님을 기억하며 절합니다”,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청년, ○○○님을 기억하며 절합니다”라며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언급했다. 유가족, 스님, 시민들은 영정을 향해 절을 올렸다. 돗자리에 자리가 부족해 맨 바닥에서 절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외국인 추모객의 모습도 보였다. 159명 희생자 중엔 26명의 외국인도 있었다. 그들은 슬픈 표정으로 영정을 응시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희생자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곳곳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았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 주최 추모제에서 희생자 유가족이 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유민지 기자


이날 유가족 추모제는 박향미 화가의 그림 전달, 종교계 말씀 등으로 시작됐다. 이어 희생자 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직접 써온 편지를 읽었다. 고 김수진씨 어머니 조은아씨는 “벌써 시간이 흘러 10월이 됐어”라며 “10월은 너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고, 네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달이기도 해서 더욱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국엔 언니, 오빠, 동생들 친구들 많이 있던데, 별가족들이 챙기는 생일상 함께 먹으며 159번 행복했으면 해”라며 “이게 엄마아빠 마음이야. 천국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곧 만나자”라고 낭독했다.

청년들이 준비한 제안서를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세월호,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등 한국 사회를 관통한 재난과 참사를 겪은 이들이다. 이날 홍희진·김시온 학생은 “청년들은 사회적 재난과 기후위기와 불평등 등 다가올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일상을 고민하는 세대”라며 “이 불안은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불평등하고 안전대책이 부재한 사회가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 재난과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대통령에겐 참사피해자와 시민사회 전반을 향한 진정성 있는 사과 요구, 모든 정당에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가족 추도사를 맡은 고 이승연씨 어머니 연미숙씨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한데,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흐릿하다”며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연씨는 “책임회피와 부실한 수사는 유가족에게 치유할 수 없는 한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진실규명과 추모행렬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정미 유가족 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폐회사에서 “내일 저희는 정치집회가 아닌 추모제를 할 것”이라며 “아이들의 아픈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모두 담을 테니, 여기계신 분들도 다함께 동참해주셨으면 한다“라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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