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성공학도가 마주 앉아 산업 현장 진출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업적이 과소평가 된다는 이른바 ‘마틸다 효과’를 해소할 다양한 해법들이 오갔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WITECK)는 10일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산업현장 여성 기술개발(R&D) 인력 채용 박람회’를 열었다. 이날 박람회 사전 행사로 장영진 산업부 차관과 이영옥 WITECK 수석 부회장,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김희 포스코 상무, 전아름 LG전자 인사담당 책임 등과 여성 공학인 5명이 모여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이야기했다.
장 차관은 이날 “지금은 인력 부족 시대다.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인재가 필요하다.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오늘 이야기 해주시는 것을 정부가 적극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R&D 예산 감축 논란 관련 언급도 있었다. 장 차관은 “예산을 조정하는 과정에서도 고용문제는 최우선하겠다”면서 “오는 2024년부터는 군살을 뺐으니 근육을 붙여나가는 작업을 할 것이다. 예산 내용은 더욱 건강해지고 연구 인력의 연구 기회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공학도가 겪는 산업 현장의 애로사항도 가감 없이 개진됐다. 첫 포문은 이 부회장이 열었다. 이 부회장은 산업 현장에 진출한 여성 엔지니어 관련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여성 리더 역량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법에 따라 공공기관·연구소 소속 여성 공학도 DB는 마련되어 있으나 산업 현장은 전무한 상황이다. 장 차관은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다양한 직무경험이 지원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른 직무를 택했다가 다시 공학 계열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이모(29·여)씨는 “이공계에도 다양한 진로가 있으나 한정된 정보로 이를 알지 못해 아예 다른 직무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며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여성 공학도의 이야기가 공유되거나 관련 직무 경험이 뒷받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공계 취업을 준비 또 다른 여성도 “공정기술에도 관심이 많지만 면접을 가게 되면 (여성이기에) ‘정말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며 “고등교육 현장에서 단순히 연구하는 걸 넘어 직무 관련 교육과 현장실습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경력이 단절된 시니어급 여성 공학도를 위한 지원책도 촉구됐다. 대기업 엔지니어직 퇴사 후 재취업을 준비 중인 류모(40대 후반·여)씨는 “저와 같은 시니어급 여성 엔지니어가 갈 수 있는 적절한 일자리가 없다. 현장에서는 대부분 실무를 담당한 주니어급만 원한다”며 “시니어급을 위한 지원이나 정책은 전무하다. 다시 사회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선배들이 잘돼야 후배들도 힘을 얻는다.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협회와 함께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했다.
이날 박람회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동진쎄미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에스지에스 등 34개 기업이 참여, 채용상담을 진행했다.
여성 공학 인재에 대한 기업의 인식도 달라졌다. 발전기 제조업체인 코모텍 관계자는 “여성 연구원들이 현장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며 “여성 인력을 더욱 확충하고자 박람회장을 찾았다. 전기·전자·기계를 전공한 성실한 인력을 환영한다”고 이야기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재료 등을 다루는 동진쎄미켐 관계자도 “R&D 분야에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연구직의 40%가 여성”이라며 “R&D는 단기적 성과가 아닌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책임감 있고 끈질기게 연구할 인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