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정종현 어린이의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와 환자안전법 제정
2010년 5월 19일, ‘환자안전’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종현이 사건이다. 종현이는 경북대병원에서 백혈병 투병 중인 아홉 살 어린이였다. 2007년 4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3년간 총 16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17차 항암치료만 받으면 완치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마지막 항암치료을 받다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종현이의 정맥으로 주사되어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과 척수강 내로 주사되어야 할 항암제 ‘시타라빈’이 의사의 실수로 뒤바뀌어 주사된 것이다. 종현이는 열흘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종현이 부모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빈크리스틴’이라는 단어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사망한 백혈병 어린이가 우리나라에서도 종현이 이외 세 명이나 더 있었고 영국, 캐나다 등 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상세한 투약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캐나다 재판부는 1989년 이례적으로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병원에 적절하고 분별 있는 기준을 마련하도록 촉구하는 권고안을 판결문에 적시하기도 했다
종현이 사건 발생 이전 세 건의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은 모두 유족과 병원이 합의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이러한 환자안전사고 정보들은 다른 병원들과 공유되지 않았고,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예방의 자료로도 활용되지 않았다. 종현이 부모는 종현이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제2의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2010년 10월부터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다. 2012년 8월 18일부터는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명 문자 청원운동’을 전개했다. 환자안전사고로 제2의 종현이가 생기면 안 된다는 부모의 간절한 목소리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2013년 4월 9일 1만명의 이름으로 국회에 ‘환자안전법’ 제정을 청원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14년 1월에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각각 ‘환자안전법’을 대표 발의했다.
2018년부터 종현이 기일인 5월 29일을 환자안전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 개최
보건복지부는 정종현 어린이가 2010년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건으로 사망한 후 제2·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전개했던 종현이 부모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2018년 종현이 기일인 5월 29일을 “환자안전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9년 WHO(세계보건기구)가 9월 17일을 “세계 환자안전의 날”로 지정하고 글로벌 기념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까지 WHO(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세계 환자안전의 날”인 9월 17일이 아닌 종현이 기일인 5월 29일에 “환자안전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환자안전의 국제적 연대가 중요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세계 환자안전의 날”에 맞춰 글로벌 환자안전 캠페인에 참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년간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었고, 2021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9월 17일에 “세계 환자안전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종현이 부모가 이해는 해 주었지만, 정부에 종현이 기일을 환자안전의 날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고 오히려 정부가 종현이 기일을 환자안전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부모에게 동의받고 추진해 놓고 3년 만에 기념일 날짜를 바꾼 조치는 분명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정부가 환자안전의 날 기념일을 WHO(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9월 17일로 바꿔 국가적 기념행사와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더라도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안타깝게 죽은 종현이와 제2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헌신했던 부모를 기억하는 행사도 종현이 기일인 5월 29일에 진행했으면 좋겠다.
2023년 “세계 환자안전의 날” 주제는 “환자안전을 위한 환자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2023년 “세계 환자안전의 날” 주제는 “환자안전을 위한 환자의 적극적인 참여"다. 2014년 환자안전법 제정 당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WHO(세계보건기구)는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했었고, 환자안전법에 포함할 내용에 대해 WHO(세계보건기구)는 넣을 수 있는 모든 조항에 환자와 환자보호자의 참여 규정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환자안전법은 18개 조항 중 8개 조항에 환자와 환자보호자 참여 규정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환자안전법은 환자와 환자보호자 참여가 강조된 법률이 되었다.
올해 2023년 “세계 환자안전의 날” 슬로건은 “환자안전을 위해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9월 17일 “세계 환자안전의 날”을 기념하고, 환자안전을 위해 환자의 적극적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했다. 환자단체에는 환자의 투병과 권익 증진 활동뿐만 아니라 환자안전을 위한 환자참여 활동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학원은 1999년 “미국의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 사망자 수가 매년 4만4000명~9만8000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To Err is Human)”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는 병원 안전사고 관련 통계가 없다. 그래서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가 2010년 ‘건강보험 통계연보’ 입원 건수에 외국의 조사연구 결과를 대입해 우리나라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 사망자 수를 계산했다.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죽지 말아야 할 환자 1만7000여 명이 병원에서 안전사고로 죽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6000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거의 3배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환자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사고로 환자가 죽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병원이 역할이 되었다.
2001년 한국에 들어온 기적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도 연간 3000여 명의 환자밖에 살리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들이 이중삼중의 환자 안전사고 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병원에서 발생한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해 이를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 병원들이 공동 예방 노력을 한다면 연간 1만7000명을 살릴 수도 있다. 이처럼 병원에 환자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연간 1만7000명 이상을 살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