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다니면 페미?”…그래도 여대는 계속돼야 한다

“여대 다니면 페미?”…그래도 여대는 계속돼야 한다

여대, 여성혐오가 농축된 상징적인 장소
전문가, 여대혐오는 성평등 두려움이 만든 것
역차별과 페미니즘 낙인에도 여대 필요해

기사승인 2023-12-12 11:00:12
지난 3월 서울 한 여대에서 학생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 서울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김현영(21·가명)씨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는다. 왜 여대에 진학했냐는 질문이다. 대외활동과 동창 모임, 아르바이트 등 어디서든 그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그때마다 김씨는 “너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 사상 검증을 당하는 느낌도 든다. 김씨는 “남녀 공학에 다니는 사람에겐 왜 그 학교에 갔냐고 묻지 않는다”라며 “여대는 왜 진학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 직장인 이지우(29·가명)씨가 여대를 졸업한 사실을 알면, 직장 동료와 상사들은 “너 혹시 페미 그런거냐”라고 묻는다. 이씨는 “숏컷이고 여대 나왔으면 볼 것도 없이 페미니스트냐”라며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게 어불성설이고 웃기다”고 말했다.

여대 출신인지 묻는 일이 페미(페미니스트) 여부를 검증하는 수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대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페미들에게 장악당한 여대들 근황’, ‘여대에 페미가 많은 이유’, ‘21세기에 여대가 근데 존재할 이유가 있나요’ 등의 게시글이 다수 존재했다. 댓글은 “공부만 하던 애들이 들어와서 세상 물정 모르니 세뇌하기 딱이겠다”, “불평등의 끝인 여대에 가놓고 페미짓을 한다? 완전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달 2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여대 출신 이력서는 무조건 거른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대를 페미니즘 검증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여대 존재 자체가 성차별”이라며 “왜 서울에 여대만 있고 남대는 없냐”며 역차별을 이유로 여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온라인상에선 페미니즘이 의미가 불분명하고 사전적 정의와 다르게 쓰이는 분위기였다. 페미니즘은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성차별로 발생하는 문제를 없애야 한다는 성평등 운동’이지만, 온라인에선 ‘여성우월주의, 남성혐오’ 등으로 정의되고 있었다.

지난 3월 서울 한 여대에서 학생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여대는 존속해야 한다, 차별·혐오 사라질 때까지”

초창기 여대는 이 같은 논란과 거리가 멀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부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길을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아픈 역사가 있다. 지난 1895년 을미개혁으로 만들어진 소학교령에 따르면 “7세에서 15세까지의 남녀아동이 취학할 수 있도록 소학교를 세워 남녀 모두 교육을 받게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 통념으로 남녀가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탄생한 여성들만의 근대교육기관이 여대다.

남녀가 함께 공부할 수 없다는 사회 통념은 사라졌다. 대신 역차별 주장과 페미니즘 낙인 등 새로운 갈등이 들어섰다. 그럼에도 여대생들은 여대가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김희주(22)씨는 “여대 출신 똑똑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건 남성들에게 맡겨 둔 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라며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리천장 등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질 때까지 여대는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들 두려움이 만든 젠더 갈등, 사회 통합 방해”


전문가는 여대에 대한 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온라인상에 퍼진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민숙 조사관은 “페미니즘은 남성을 전멸시키고 밟고 올라가서 여성들의 세상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삶이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등 불공정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대 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성평등해지기 싫고, 과거로 회귀했으면 하는 남성들의 바람과 평등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결과”라며 “오해가 젠더 갈등을 부추겨 사회 통합을 방해한다. 정부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으로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등 성비할당제를 지적하곤 한다. 이 제도가 실력 없는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3년부터 시행된 양성평등채용목표제는 공공부분에서 남녀 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로 합격자 중 남녀 한쪽의 비율이 70%를 넘지 않게 하고 있다. 여성을 위한 제도, 남성을 역차별하는 제도로 오해하지만, 실제 이 제도로 남성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지난해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추가 합격한 공무원은 남성이 323명, 여성 71명으로 남성이 더 많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도 “성적순으로 선발하면 여성들이 더 많아 남성에게 기회를 주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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